2023년 4월 (이정훈 교수의 성경적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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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3-04-25 13:34 조회2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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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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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대, 바른 믿음으로 인도하는 안내서
“성경적으로 살아야 크리스천이다!”
21세기 메타버스 시대에도 크리스천의 삶의 기준은 성경!
성경적으로 살기 위해선 성경과 세계, 인간에 대한 앎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런 구체적인 성경적 세계관은 없었다. 법철학자인 이정훈 교수는 이 한권의 책 속에서 성경의 핵심 교리와 경제, 역사, 법·정치, 문화, 철학 삶의 모든 영역에서 무엇이 성경적인 것인지 그 기준을 제시한다.
- 언약과 통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나
- 법정적 칭의: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왜 계속 죄를 지을까
- 거듭난 성도는 어떻게 성화되는가
- 종교개혁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나
- 무소유한 것이 성경적? 적게 가지는 것이 성경적? 자본주의는 악?
- 현대에도 적용가능한 성경적인 직업관과 경제관은 무엇일까
- 조선에서 대한민국이 세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두신 뜻은 무엇일까
-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인권과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 자유민주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 법의 통치는 크리스천에게 왜 중요한가
-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성경적인 방식일까
- 성정치·성혁명은 어떻게 프로테스탄티즘을 해체하는가
- PC(정치적 올바름)와 혐오표현금지는 어떻게 자유를 침식하나
- 세상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까
- 영성이 지성을 이끌 때: 철학과 이성의 역할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삶의 각 영역이 성경적으로 재구성되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통치와 성경의 핵심 진리가 동서양과 고금을 넘나드는 통찰과 지식의 향연 속에서 펼쳐진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정훈
교수, 작가, 유튜버, 시민단체 대표.
서울대학교 법학박사(법철학전공, Ph.D.).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일반신학석사(MTS. 2022).
울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법학과 교수로 일하며, 유튜브 채널 ‘이정훈교수’, ‘PLI 스터디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엘정책연구원(ELPI) 대표로, 산하 교육기관인 PLI(Practical Leadership Institute)에서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강좌를 통해 복음주의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해 오고 있다.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기독교와 선거』, 『Beyond Versailles, the 1919 Moment and a New Order in East Asia』(공저), 『Confucianism, Law and Democracy in Contemporary Korea』(공저) 등의 책을 저술했다.
목차
서문
성경적 세계관 입문) 크리스천이란 어떤 존재인가
- 하나님의 언약과 통치
- 문화사명: 크리스천이 세상을 이기는 법
성경적 세계관 경제) 성경적 직업관과 경제관
- 한국 크리스천들의 현주소
- 성경적 직업관과 경제관
-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
- 정의란 무엇인가
- 크리스천들은 1도 모르는 자본주의
성경적 세계관 역사) 이 땅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 종교개혁과 대한민국의 건국
- 자유민주공화국의 출발과 과제
- 진짜 헬조선의 정체
-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 대한민국의 근대화 : 억세게 운 좋은 나라
- 〈역사부록〉 일본 메이지 헌법의 제정과 구한말 개화파들의 추종
성경적 세계관 법·정치) 자유와 인권의 역사
-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민주주의의 핵심, 책임질 수 있는 개인
-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
- 영역주권의 대리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 대한민국 헌법의 4대 가치와 보수주의의 정신
- 자유민주주의의 적, 사회주의
- 21세기 한국과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
성경적 세계관 문화)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
- 세계를 바꾼 68혁명
- 성혁명과 프로테스탄티즘의 해체
- 서구세계의 자유는 어떻게 침식되었나
성경적 세계관 철학) 영성이 이끄는 지성
- 철학은 답을 주는가
- 현대 철학의 흐름들
맺으며
책 속으로
그런데 성경이 라틴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자국어로 번역되었다고 해도 성경의 진리를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성경공부를 시도한 크리스천들이 대부분 경험하는 것처럼 성경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이단은 성경 외의 다른 것을 진리로 외치는 게 아니라 성경 안의 내용을 가져와서 왜곡한다는 걸 알아야 해요. 사단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말씀을 인용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사단이 왜곡한 말씀의 참 뜻을 얘기하시면서 그 시험에서 승리하시죠(마 4:1-11). 예수님이 사단에게 시험받은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성경은 전체 진리의 맥락 안에서 일관성(coherence)있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진리의 요약이자 기준인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신론(삼위일체 하나님), 기독론(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구원론(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성화론(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가)과 같은 핵심 교리들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을 이해해야 바른 신앙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이단에 빠집니다. 내 느낌으로, 내 생각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내가복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게 할 뿐인 겁니다.
31-32쪽, 하나님의 언약과 통치
‘이신칭의’의 교리에서 중요한 것이 이 칭의가 ‘법정적 칭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치러야 할 죽음이라는 형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치르셨기 때문에 공의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법정에 선 죄인을 ‘의로운 자’라고 판결해 주신 것입니다. 나는 의인으로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실제로 ‘의롭게 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어 나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것을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의인으로 봐 주시지만 나는 여전히 죄인이에요. 거듭난 이가 여전히 죄로 넘어지는 것도 이것 때문이에요. 저도 회심하고서 고민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어요. 분명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모든 죄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데(구원받았는데) 왜 나는 죄의 유혹에 무력한가? 왜 계속 죄를 짓는가? 이런 고민을 여러분들도 많이 하셨을 거예요. 칭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고민으로 구원의 확신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것은 죄를 다시 안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했던 이가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이제 자녀의 신분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에게 너희들이 말썽을 좀 피워도 계속 너희는 내 자녀라고 선언해주신다는 거예요.
39-40쪽, 하나님의 언약과 통치
근대를 바라볼 때 맑스는 노동을 소외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자본가와의 생산 관계에서 노동 계급은 항상 착취당한다는 식으로 풀어가고 베버는 탁월한 서구의 근대,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 바로 이런 참 신앙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분석합니다. 노동을 중시하고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자본을 축적해서 재투자함으로써 사회가 발전하는데, 대신 본인은 신앙인이기 때문에 사치와 향락을 하지 않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윤리, 이런 탁월한 정신이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고 근대자본주의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라는 거죠.
119쪽, 성경적 직업관과 경제관
그럼 이 자유 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무엇이 뒷받침되어야 할까요? 동감에 기반한 사회공동체의 윤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간이 이기적인 욕망으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데도 사회가 폭발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사회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질서를 만들어내고 사회통합을 해내기 때문이에요. 동감을 통해 이기심을 억제할 때 이웃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하고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사회질서가 자율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경쟁에 낙오한 사람들을 동감으로 품고 타인을 인식하면서 지나친 탐욕을 억제할 때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요. 사회의 중심에서 교회가 신앙을 통해 사회질서를 구성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윤리를 체화하도록 역할을 하는 게 아주 중요해요. 스미스가 물질적 풍요에만 초점을 맞추고 시장중심의 무한경쟁을 정당화하는 학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예요. 그는 『도덕감정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불신과 갈등, 폭력이 만연한 사회는 국가의 개입을 부르고 이것은 경제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인간이 누리는 모든 자유를 축소시킵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공권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성숙하고 윤리가 체화된 공동체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스미스는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152-153쪽,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
이렇게 크리스천들은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질적 자유를 현실적으로 제도화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다 보니까 선교를 할 수 있는 터전이 보장돼야 하고, 선교를 하려면 여행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겠지요. 또, 교회를 세워야 하니까 법인설립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많은 자유들이 기본권으로써 보장되어야 했던 겁니다. 민사상 부여되는 계약의 자유 안에서의 자유들 또한 다 여기서 시작되는 거예요. 자유의 제도화, 즉 기본권으로서의 자유권이 헌법에 탑재되는 출발이 바로 종교개혁이에요. 종교개혁은 영국에서 탁월한 법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정말 놀랍죠? 우리가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세워진 법과 국가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한 것만 기억해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올 겁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인간에게 자유가 은혜로 주어진 것이구나.’라고 말입니다.
197-198쪽, 종교개혁과 대한민국의 건국
부흥의 본질이 뭐냐 했더니 회개와 말씀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말씀으로 돌아가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합니다. 죄를 각성하고 회개한 성도는 말씀을 사모하는 거죠. 항상 모든 부흥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강조한 것처럼 죄에 대한 각성과 깊이 있는 회개, 그리고 예수님의 임재, 그 안에서 뜨겁게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반드시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해요. 감정에 치우치는 신앙이 아니라 말씀으로 균형 잡힌 바른 신앙 그리고 영성과 지성이 함께 있지만, 영성이 지성을 이끌고,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인간의 책임이 세팅될 때 멋있는 신앙인으로 변신하는 겁니다. 이게 대각성의 핵심입니다.
250쪽,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자유(대의)민주주의’에서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중심에 서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산물로 등장했고, 17-18세기 이래 발전한 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습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이 이러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헌법을 통해 제도화했어요. 매디슨은 ‘다수의 지배’를 실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수의 횡포나 독재로부터 개인의 권리(주로 자유권적 기본권)를 헌법으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헌법적 통제를 중시하고 다수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견제 시스템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제도로 보장된 민주주의’ 즉, ‘헌정적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357-358,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 그렇게 해서 개인이 등장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겁니다. 이것은 처음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는 행위 주체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윤리적 책임의 주체로서의 개인이 처음 등장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노예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까 책임이 없어요. 그런데 종교개혁의 위대함은 각 개인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경을 품에 품고, 자기가 직접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자유로운 존재는 책임을 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의 주체가 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개인의 탄생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 윤리 얘기하면서 좌경화될 게 아니고 종교개혁의 윤리가 왜 도덕적으로 탁월한 인간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이런 인간이 안 나오면 앞에서 얘기한 자유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381-382쪽, 민주주의의 핵심, 책임질 수 있는 개인
이 책에서 노라 칼린(Norah Carlin)이 뭐라고 주장합니까? 자본주의를 어떻게 끝장낼 것인가? 지긋지긋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국가, 교회, 가정 이걸 어떻게 끝장낼 수 있는가? 우리는 다 해봤다. 그러나 안되지 않냐?. 정신 차려라. 그러면서 뭐라고 강조합니까?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있지 않냐? 그게 뭐예요? 기독교라는 겁니다. 기독교를 끝장내지 않고서 어떻게 자본주의와 싸우려고 하냐? 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제가 이런 진실을 알리는 것이 음모입니까? 아니면, 이런 진실을 감추고 교회에서 거짓말하면서 이런 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위해 교회 안에서 정치 운동하는 것이 음모입니까?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이 교회해체의 승리를 어떻게 획득했다고 강조합니까? 그들은 창조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동성애를 인권 담론의 핵심테제
출판사 서평
“현실의 문제들을 마주할 때 일어나는 크리스천의 지적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성경적 세계관”
크리스천은 왜(Why) 사는가? 크리스천은 어떻게(How) 살아야 하는가? 과학이 발달해서 가상세계가 현실이 되고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크리스천에게 삶의 기준은 성경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삶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얻는 존재가 바로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꽤 많이 한 크리스천들도 자신이 이해한 성경말씀을 삶의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내 집에 침입한 강도에게도 그걸 적용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해주는 것일까? 부자는 천국가기 어렵다고 말씀에 나오니 크리스천은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걸까? 사도행전에 소유를 모두 팔아서 성도들과 함께 하라고 했으니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할까?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참아야 할까? 국가와 정부가 교회를 핍박한다면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교회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 신학적인 입장은 무엇일까? 이 외에도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성경내용이지만 삶에 적용하려 할 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꽤 많다. 왜 그럴까? 성경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 역사, 법·정치, 문화 등 세상의 영역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 성경말씀을 그 상황에 적용해도 되는지 판단의 기준들이 바로 서게 된다.
현실 속의 크리스천들이 겪는 이런 지적갈증과 어려움을 해소해 줄 구체적인 성경적 세계관 책을 출판하게 되어 뜻깊다. 『이정훈 교수의 성경적 세계관』은 기존의 추상적인 기독교 세계관 책들과는 달리 경제, 역사, 법·정치, 문화 등 세상의 영역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들과 그에 대한 성경적 적용점들을 제시한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실재했던 이야기들과 사상들,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내러티브에는 성경적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녹아있다. 각 영역에 해당되는 내용들을 읽으며 무엇이 성경적인 것인지 성찰하다 보면 어느 새 성경적 세계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