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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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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5-02-15 16:38 조회1,6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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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되게 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바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램이 없다는 것을 ‘욕심이 없음’ 혹은 ‘겸손함’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램이 없다는 것처럼 교만한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인양 행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바라는 만큼 부모님에게 기대며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겸손이고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십니까?  바라는 내용과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이 결정됩니다.  그것을 많이 생각하고 추구하다보면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바뀌어 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바라면 바라는만큼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막이를 내려 우리 자신을 열어보여주는 셈이 됩니다.  그것은 결국 상처 받기 쉬운 길을 택하는 일이 되고 말기도 합니다.  내 안에 실망하는 마음이 자리잡게 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라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이 못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이 바램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님을 찾으라 하시고 홍해가 앞길을 막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요청하십니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고 급해도 먼저 주님의 나라를 바라고 구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는 이번 주에 ‘평신도 지도자 세미나’를 통해서 지금 우리가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 볼 것이고, 다음 주 ‘사역 박람회’를 통하여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재확인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저의 바램은 여러분이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처음 두 사람처럼 큰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땅에 묻어버린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으로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바램이 없었습니다.  은행에 넣음으로 이자라도 얻고자 하는 바램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본전이라도 건지는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래서 마음이 다칠 수가 있다해도 주인을 위해 바램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칠 일도 없습니다.  특히 이민교회에서 사역하다 이리저리 치인 경험이 쌓이다보면 나서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릴법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바라며 주님의 나라를 위해 바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한 결과로 상처가 생긴다면 그것은 하늘의 영광이요 면류관입니다.  저는 저 자신이나 여러분들이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손끝 하나 다친 곳이 없어 주님께서 만져주시고 손봐주실 것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라 “영광뿐인 상처”의 흔적이 주님의 손과 발되어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에게서 많이 발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