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을 이렇게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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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23 20:43 조회1,8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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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너진 다윗왕조를 일으킬 위대한 왕으로 오인했습니다. 그래서 승리와 영광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군중들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종려주일은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저주와 실패를 상징합니다.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으로 짧은 삶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베푸신 그 사랑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이 한주간을 보내면서 그리스도의 수난 속에 알알이 맺혀있는 사랑을 캐내어 우리 가슴에 가득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시긴 전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한 주간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한번 “흉내”라도 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월요인엔 성전에서 장사하며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타락시킨 사람들을 쫓아내신 “성전 청결의 날”입니다 (막11:15-1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영적 현주소를 살펴보며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여 계시는 “성전”인 우리 몸(고전 6:19)을 아울러 성찰해보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 교회와 내 삶의 모습에 “강도의 굴혈”의 요소들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화요일은 “변론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날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마 21).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으셨고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을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인해 눈물흘리셨습니다.
수요일은 한마디로 “침묵의 날”입니다. 복음서에는 이 날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잠시 나와 베다니에 가셔서 주님께서는 아마도 조용히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태풍 전야에 찾아오는 고요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중동’(精中動)이란 말처럼 주님의 마음은 끊임없는 번민이 차 올랐을 것입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처절한 수난을 내다보시며 내적 준비를 하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요즘같이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월을 지나면서 주님과 고요하지만 깊은 영적교제를 통한 ‘만반의 준비’를 닦는 것이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목요일은 “번민의 날”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일”로도 불리워집니다.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날이기도 합니다. 제자들, 심지어는 당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시며 섬김의 도를 몸소 보여주신 날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긴 고별사를 하신 날입니다 (요 14-16장).
금요일은 “수난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의 앞 부분을 제외한 전체 사건이 바로 이 날 하루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벽부터 벌어진 불법재판을 시작으로 해서 오전 9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정당한 절차도 밟지 않고 일사천리로 모든 일을 눈깜짝할 사이에 처리해 버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일곱 말을 하시고 오후 3시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토요일은 “비애의 날”로 고난주간이 끝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이 날은 주님의 죽으심과 아울러 부활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가급적 이 한 주간엔 지나친 오락이나 큰 잔치등과 같이 우리 자신의 유쾌함에 치중하는 시간은 가급적 삼가고 주님의 수난을 생각하는 경건한 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번 주만이라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주님과의 교제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나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말씀을 읽는 다던지 십자가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도 경건을 추구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수난주간은 어느 해 보다 더 뜻깊은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월요인엔 성전에서 장사하며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타락시킨 사람들을 쫓아내신 “성전 청결의 날”입니다 (막11:15-17).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영적 현주소를 살펴보며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여 계시는 “성전”인 우리 몸(고전 6:19)을 아울러 성찰해보는 날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 교회와 내 삶의 모습에 “강도의 굴혈”의 요소들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화요일은 “변론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날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마 21).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으셨고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쳤을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인해 눈물흘리셨습니다.
수요일은 한마디로 “침묵의 날”입니다. 복음서에는 이 날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잠시 나와 베다니에 가셔서 주님께서는 아마도 조용히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태풍 전야에 찾아오는 고요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중동’(精中動)이란 말처럼 주님의 마음은 끊임없는 번민이 차 올랐을 것입니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처절한 수난을 내다보시며 내적 준비를 하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요즘같이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월을 지나면서 주님과 고요하지만 깊은 영적교제를 통한 ‘만반의 준비’를 닦는 것이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목요일은 “번민의 날”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일”로도 불리워집니다.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날이기도 합니다. 제자들, 심지어는 당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시며 섬김의 도를 몸소 보여주신 날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긴 고별사를 하신 날입니다 (요 14-16장).
금요일은 “수난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의 앞 부분을 제외한 전체 사건이 바로 이 날 하루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벽부터 벌어진 불법재판을 시작으로 해서 오전 9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정당한 절차도 밟지 않고 일사천리로 모든 일을 눈깜짝할 사이에 처리해 버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일곱 말을 하시고 오후 3시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토요일은 “비애의 날”로 고난주간이 끝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이 날은 주님의 죽으심과 아울러 부활을 기다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가급적 이 한 주간엔 지나친 오락이나 큰 잔치등과 같이 우리 자신의 유쾌함에 치중하는 시간은 가급적 삼가고 주님의 수난을 생각하는 경건한 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번 주만이라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주님과의 교제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나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말씀을 읽는 다던지 십자가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도 경건을 추구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수난주간은 어느 해 보다 더 뜻깊은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