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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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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3-04-07 09:42 조회3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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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영어로는 Easter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에는 Easter 라는 단어가 딱 한번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2:4에, 그것도 킹제임스 번역에만 한 번 등장합니다. 다른 영어 번역 성경은 어디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New King James Version에서 조차도 이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Resurrection”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일어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아나스타시스’라는 단어로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스터”라는 말 대신에 Resurrection Day, ‘부활하신 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부활절은 성탄절과는 다르게 매년 날짜가 다릅니다. 그 이유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에 따라 지키기 때문입니다. 즉, 춘분 다음의 첫번째 음력 보름이 지난 후에 오는 첫번째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는데 이것은 325년에 열린 니케야 기독교 공의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양력을 사용하던 애굽이 아니라 음력을 사용하던 바벨론에 포로생활하며 익숙해진 음력에 맞춘 히브리적 관습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상징하는 것으로는 토끼와 달걀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토끼와 달걀이 어떻게 부활절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속설로는 춘분, 즉 봄과 함께 오는 부활절에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토끼가 등장했다는 것과 달걀 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병아리의 모습에서 부활의 의미를 찾았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요즘 와서 보면 부활절이 크리스마스처럼 문화적 행사로 끝나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로 크리스마스가 이해되고 토끼와 달걀로 부활절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부활절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그 무슨 말로 강조해도 부족한, 놀랍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창조주인 그분이 피조물이 되어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신 것과, 십자가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여 구원의 길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확증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은 다 거짓이며, 교회는 사기집단이고, 기독교인들은 정신나간 종교 망상 중증 환자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성경의 모든 것이 틀림없는 사실로 증명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종교다원주의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는 이 시대 인생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힘주어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역사 이래 내노라하는 그 어떤 종교의 교주들이나 허접한 사이비 이단 교주들이나, 어느 누구도 부활한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예수님의 부활이 허구라는 것을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증명한 자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아서였겠습니까? 사실을 뒤집을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시도들이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증거에 입각한 철학적, 과학적, 혹은 양심적 결론이 아니라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고집이며, 그들의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무신론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신앙적 입장이지 주관적 경험이나 객관적 논리와 과학적 이론에 입각한 타당성있는 결론은 아닌 것입니다. 올해 부활절은 저희 가정에 참으로 특별한 부활절입니다.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했는데 최선의 결과를 주신 주님때문입니다. 그 은혜로 “집 나간지” 두 달 반만에 집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활이신 예수님께서 일으켜 주신 은혜입니다.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신실하시고 선하시고 인자하시게 다가와 주셨습니다. “아나스타시스”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또한 여러분을 동일하게 일으켜 주십니다. 유혹을 물리쳐 승리케 하시고

낙심한 마음을 소망으로 가득채우시며,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사 삶의 모든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능력이 바로 부활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다시 일어납니다.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마시고 그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교회와 가정과 민족을 위해서. 주위에 넘어진채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힘차게 외치십시오, “그가 살아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