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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어 주신 위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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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7-10-22 18:27 조회2,9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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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어머니를 주셨다’ 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적어도 자식된 이들 중에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에게 그러셨듯이 저의 어머니도 그러셨습니다, 일곱 자식들 모두에게.  그리고 특별히 저에게.


두 살 경에 소아마비에 걸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는 저를 살려보시려 등에 들쳐 업고 읍내 병원을 전전하시다 의사들마저 포기했던 충격으로 인해 일곱 자식 중에 유일하게 저를 낳으신 때가 저녁 때인지 낮인지 평생 기억하지 못하신 어머니셨습니다.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이불에 지도를 그리던 자식 때문에 사시사철 그 깊은 우물물을 길어 이불 빨래를 하시면서도 그저 살아있음에 기특해하시며 싫은 기색 한 번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셨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입시 준비를 하는 동안 폐결핵에 걸린 것이 마치 당신의 책임인 양 죄스러워하시며 늘 염려하시던 어머니셨습니다.  그러던 제가 신학교엘 가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된 것을 누구보다 더 기뻐하시며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그만큼 새벽마다 자식의 목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셨습니다.  자식이 보고 싶어 견디기 힘드시면 자식의 설교 동영상을 켜달라고 하여 혼자 보시며 우시던 어머니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지난 7월달에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픕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 고 말씀드리면 펄쩍 뛰시면서 하나님께 바친 아들이니 당신은 그것 하나로 만족하신다며 오히려 저를 위로하시던 어머니셨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 불효라고 합니다.  집 떠난 자식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중학교 졸업 후 늘상 어머니 곁에 있지 못했으니 불효자였고, 위와 같은 이유 그리고 다 기록하지 못한 더 많은 이유 때문에 불효자식 중 가장 큰 불효자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저는 언제나 “이쁜 아들”,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언제나 저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보아도 저는 그분에게 “가장 나쁜 아들” 이요 “가장 불효한 자식” 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천국에서 무슨 면목으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께도 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함께 예배에 동참해 주시고 이렇게 못난 목사를 진심을 다해 위로해 주신 여러분에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오신지 석달만에 돌아가셔서 여러분들에게 너무 부담을 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기 한이 없고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저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지극한 사랑으로 모아주신 조의금 중에 사례비와 식사비를 제외한 모든 액수를 그동안 제 아내와 제가 마음에 품고 유서에 명시한 생명보험 (아내의 직장에서 부어준 아주 약소한 액수) 사용 방법대로 몇군데 사역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저희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실거라고 온 가족들이 마음을 모아주었습니다.  즉, 장례식비 전부를 가족들이 부담하고, 조의금은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역과 뉴올리언스 신학생 장학금, 남침례회 국내선교부, 그리고 극동방송등에 나누어 헌금하자는 것이 모든 가족들이 어머니의 뜻을 담아 내린 결정입니다.  수 십년 동안 섬기셨던 필라델피아 임마누엘 교회에도 거기서 모아진 조의금을 그곳의 사역에 맞게 같은 마음을 담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만큼이라도 목회해 올 수 있었음은 저희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드린 눈물의 기도 때문이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빈자리가 저의 남은 목회 기간동안 어떻게 채워질런지 모르겠지만, 여러분께서 대신 채워주신다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다시한번 온 가족들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