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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보다는 변호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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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19-10-19 10:11 조회2,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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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의 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적잖이 큰 충격을 준 것 같습니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젊디 젊은 나이에 짊어 져야 할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런 극단의 선택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은 또한 얼마나 참담할까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메스컴에 올라오는 이런 부류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 인생을 망가뜨리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의 공포스러운 힘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내 뱉는 무책임한 가십입니다.  흔히 말하는 악플이 끼치는 악한 영향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쉽게 짐작이 됩니다.

 

가십이나 악플을 하는 자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이란 자기 자신을 비정상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이것은 겸손과는 전혀 다릅니다.  겸손은 내 삶의 주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분을 높이기 위해 나를 낮추는 것, 그 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 그 분만이 나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그렇기 때문에 비굴함이나 비겁함이나 높아짐을 의도한 전략적이고 위선적인 낮아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십은 열등감에서 시작된 또 다른 교만이고 교만은 변장된 열등감입니다.

 

그런데 열등감이 수동적으로 반응을 하던지 능동적으로 반응을 하여 교만으로 발전하던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가십이고 악플입니다.  자기 자신을 비정상으로 낮게 평가함이 결국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그 사람을 깍아 내리는 언사를 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십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하나 같이 ‘내로남불’의 사고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기는 항상 맞고 상대방은 언제나 틀립니다.  그것에 대한 대단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그 근거없는 확신의 영향을 쉽게 받습니다.  대다수의 소경들이 한 사람 소경의 용감한 “썰” 때문에 동반으로 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말 하는 것은 싫어해야 합니다.  인생에 대해 비관적이다가 남의 말 할 때, 그것도 입방아를 찧을 때 힘이 나고, 살 맛이 나고, 기력을 회복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도 남의 말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첫째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도록 디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혼자 신앙생활 할 수 없도록 의도되었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거듭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말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말은, 그것도 다른 사람에 대해 하는 말은 좋은 말만이어야 합니다.  좋지 않은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교회됩니다.  교회를 무력화시키는 것들이 많은 중, 가장 흔하고 쉽고 무시무시한 것이 바로 가십입니다.

 

가십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인기 목록 1번입니다.  아무리 핫 (Hot) 상품도 유행을 타는데, 그래서 해가 가고 시즌이 변하면 하늘을 찌를듯한 인기도 시들시들해지는 법인데, 가십은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인기 짱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래서 인생의 연륜이 쌓일수록 아는 것도 많아지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진리일진대, 그래서 머릿 숱이 적어지고 백발이 되어갈 수록 가십의 인기도 떨어져야 함이 정상인데, 현실은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날카롭게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습니다.  청년의 가십은 촌스럽고 중년의 가십은 “아재”스럽다면 노인의 가십은 세련스럽습니다.

 

오늘 우리는 야고보서 강해설교를 마칩니다.  행동하는 믿음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야고보서가 그 중에서도 여러차례에 걸쳐 주제 삼은 것이 바로 성도의 바른 언어생활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바른 언어생활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가십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십을 들어줌으로써 동조하거나 공범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이는 독이 가득” (약 3:8)해서 말하는 사람도 죽이고 듣는 사람도 죽이기 때문입니다.

 

칭찬하는 말만 하십시오.  격려해주는 말만 하십시오.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만 합시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말 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듣는 저 사람이 어떤 기분이 들까? 먼저 생각을 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철없는 자식은 부모에게 생각없이 말할지라도 성숙한 부모는 자식을 생각하면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골라냅니다.  거기다가 같은 뜻이라도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고루 폭넓게 생각하고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언어생활에 관한 한 검사가 아니라 변호사와 같은 역할이 적절합니다.  검사는 들춰내지만 변호사는 덮어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