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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람들의 거룩한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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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19-09-14 10:42 조회2,044회 댓글0건

본문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라 부릅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아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변화된 이 영적 정체성이 묻어나와야만 합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언어입니다.  

 

아이러니컬 하지만 전혀 기독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책인 데일 카네기의 “친구를 얻는 법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법”에 나오는 글 가운데 첫 번째 장의 주제인 “사람을 움직이는 세가지 원칙”이 오늘 우리 거룩한 사람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 중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는 대목에 나오는 말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의 원망을 사고 싶은가? 그렇다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 사람을 신랄하게 비난하면 된다.  그리고 그 비난이 정확하고 타당한 것일수록 더욱 효과적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논리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편견에 가득 차 있으며 자존심과 허영심에 휩싸여 행동하는 어리석고 가련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비난하는 행위는 다이너마이트를 짊어지고 자존심이라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 지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단점은 절대로 끄집어내지 않으며 장점만을 부각시킨다.”  이것은 밴자민 프랭클린의 생활 철학으로서 평범하고 내성적인 한 청년을 탁월한 외교가로 만든 비결이다.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바보라도 능히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바보일수록 그러기를 즐긴다.  그러나 이해와 관용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노력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그러나 감정이 우선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지키기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선 상대방이 왜 그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힘써보자.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용등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교회는 신자들의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거룩’이라는 가치의 기준을 접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준의 잣대를 어디에 들이대느냐인데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면 타인을 향한 칭찬이 살아나지만, 남에게 사용하면 비난이 활개치게 됩니다.  건강한 크리스찬일수록 자신을 성찰하고 그 결과로 겸손과 이해 그리고 아량과 포용의 열매를 맺지만 병든 크리스찬일수록 남의 약점과 실수를 들춰내는 오만과 무례, 그리고 비난의 열매를 맺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7:1-5)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룩한 사람들이 꼭 실천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더 거룩해지고 건강하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면 우리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10월 12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