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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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19-12-28 12:55 조회2,4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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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세 밤을 지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매 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아쉬움이 커져감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요?
매 년 12월이 되면 한국에서는 그 해를 잘 설명하는 사자성어를 선택하곤 합니다. 언론사, 기관, 단체, 혹은 개인이 설문을 조사하거나 생각을 정리하여 발표하는데, 예를 들면 교수신문에서 꼽은 ‘공명지조’라던지, 중소기업 중앙회가 꼽은 ‘중석몰촉’이나 경북일보가 꼽은 ‘마고소양’이 있습니다.
공명지조라는 말은 공명조라고 하는 머리가 두 개이나 몸은 하나인 전설적인 새에서 나온 사자성어로써, 머리 하나가 자는 동안 다른 머리가 맛있는 열매를 혼자 먹어버리자 먹지 못한 머리가 홧김에 독이 든 열매를 먹어버림으로써 복수를 꾀했고, 그 결과 둘 다 죽고 말았다는 옛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다른 한 쪽을 없애지만 결국은 다 같이 죽고 만다고 하는, 서로가 운명공동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이는 다분히 현재 한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뜻 깊은 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경북일보가 꼽은 ‘마고소양’ (바라는 일이 뜻대로 잘됨)이나 중소기업 중앙회가 꼽은 ‘중석몰촉’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음) 이, 사실은 금년을 시작하면서 간절한 염원을 담아 꼽은 사자성어들 임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럽고 비관적인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걸어 온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아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큰 포부를 품고 굳센 결단을 내리며 시작한 2019년도의 신앙의 발걸음이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했고 살아남의 현상들이 삶의 구석 구석에 일어나기를 원했지만, 우리의 바램만큼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대답보다 의문 덩어리들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희소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20년이 진정으로 새 해가 되고 그것이 희소식이 되려면 우선되어야 할 점들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 안에 “거룩한 불만”이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걸었던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갖게 되는 불만감 같은 감정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로 향해야 합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나의 영적 자화상으로 인해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야 하고 불편해야 하며 ‘짜증스러워야’ 합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적당히 넘어가는 것으로는 우리의 영적 웰빙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룩한 불만’이 우리의 가치 기준과 라이프 스타일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격언처럼 우리의 언행심사의 방향에 조금씩 조율이 이루어진다면, 한 해가 다 한 2020년 이 맘때 쯤에는 목적지에 근접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2020년 우리 교회 표어는 “예수님의 마음 살기”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입버릇처럼 늘 하셨던 말씀인 ‘인간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대로 사람들의 살아가는게 마음먹기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예수님의 마음을 먹고 사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그 일 자체가 우리에게 큰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설령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살아내는게 원하는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찌라도, 그 일 자체만도 소중한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살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하며 풀어내도록 하겠습니다만, 여러분들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시고 주변 분들과 나누어보기도 함으로써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삶에 초대교회의 “예수 운동”이 조용하지만 힘차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