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성숙한 신앙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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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23 20:23 조회2,3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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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지구촌 여러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이곳 미국의 시카고시의 한 나이트 클럽의 밀폐된 공간에 누군가가 화학가스를 뿜어 수십명의 살상자가 발생하더니 한국 대구에서는 지하철 화재참사로 134명이 죽는 어이없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또 이란에서는 비행기가 떨어져 수백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고 로드 아일랜드 주의 한 음악공연장에서는 불꽃놀이를 하던 중 96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구지하철 참사의 사건경위가 밝혀지면서 우리는 할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절망이 사회에 미치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며 우리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해를 얼마든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한 몇몇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합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쩌지 못하는 슬픔을 느낍니다. 지금 온 나라가 슬퍼하며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 합니다.
이 참사를 앞에 놓고 일부에서는 책임소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합니다. 안전에 관심 기울이지 않았던 관계당국을 향한 성토의 소리가 커지고 있고, 지하철 운전사나 통제사무실에서 일하던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놓고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몇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사건을 마무리하려 할 것이고 얼마가지 않아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잊어버릴 것입니다.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될 것들은 그냥 그대로 방치된 채로 말입니다.
크리스찬인 우리들은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구제비를 거두어 보내는 것도 필요하고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회용 밴대이드식 처방보다도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이 사회가 그것을 알지 못해서 우리들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해도, 또 본인인 우리들 자신들도 잊고 있다해도, 크리스찬인 우리들이 크리스찬이기에 해야만 할 일, 크리스찬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그것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빛이 비추이면 어둠이 물러가듯,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빛을 가진 우리들은 그 빛을 발하여야합니다. 소금이 썩어 가는 것을 방지하고 부패시키는 세력들을 몰아내듯이 크리스찬인 우리들로 인해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영역에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빛과 소금인 크리스찬들이 빛이기를 거부하고 소금이기를 외면할 때 이 사회는 날로 어두워져 갈 것이고 부패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자 명령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찬이 가진 특권인 것입니다.
얼굴생김새뿐만 아니라 참으로 많은 면에서 우리가 이 사회의 주류와는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이 사회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단절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이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 우리들을 가두고 그렇게 고립된 채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크리스찬의 사회적 책임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대부분 동포들, 심지어 크리스찬 형제자매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현실은, 신앙의 척도를 이야기할 때 얼마나 사회적 책임감에 민감하냐? 얼마나 정의와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애쓰느냐? 그리고 이와 같은 의식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이슈가 신앙과는 별개인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한 인물로,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해 버리는 한국교회 신앙관은 잘못돼도 뭔가 대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성숙한 신앙입니까? 과연 누가 잘 믿는 사람입니까? 과연 크리스찬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만 합니까? 이런 질문들을 우리들 스스로에게 던지며 끊임없이 자성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23/2003
그 중에서도 대구지하철 참사의 사건경위가 밝혀지면서 우리는 할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절망이 사회에 미치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며 우리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해를 얼마든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한 몇몇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합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쩌지 못하는 슬픔을 느낍니다. 지금 온 나라가 슬퍼하며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 합니다.
이 참사를 앞에 놓고 일부에서는 책임소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합니다. 안전에 관심 기울이지 않았던 관계당국을 향한 성토의 소리가 커지고 있고, 지하철 운전사나 통제사무실에서 일하던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놓고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몇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사건을 마무리하려 할 것이고 얼마가지 않아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잊어버릴 것입니다.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될 것들은 그냥 그대로 방치된 채로 말입니다.
크리스찬인 우리들은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구제비를 거두어 보내는 것도 필요하고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회용 밴대이드식 처방보다도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이 사회가 그것을 알지 못해서 우리들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해도, 또 본인인 우리들 자신들도 잊고 있다해도, 크리스찬인 우리들이 크리스찬이기에 해야만 할 일, 크리스찬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그것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빛이 비추이면 어둠이 물러가듯,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빛을 가진 우리들은 그 빛을 발하여야합니다. 소금이 썩어 가는 것을 방지하고 부패시키는 세력들을 몰아내듯이 크리스찬인 우리들로 인해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영역에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빛과 소금인 크리스찬들이 빛이기를 거부하고 소금이기를 외면할 때 이 사회는 날로 어두워져 갈 것이고 부패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자 명령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찬이 가진 특권인 것입니다.
얼굴생김새뿐만 아니라 참으로 많은 면에서 우리가 이 사회의 주류와는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이 사회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단절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이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 우리들을 가두고 그렇게 고립된 채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크리스찬의 사회적 책임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대부분 동포들, 심지어 크리스찬 형제자매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현실은, 신앙의 척도를 이야기할 때 얼마나 사회적 책임감에 민감하냐? 얼마나 정의와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애쓰느냐? 그리고 이와 같은 의식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이슈가 신앙과는 별개인 것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한 인물로,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해 버리는 한국교회 신앙관은 잘못돼도 뭔가 대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성숙한 신앙입니까? 과연 누가 잘 믿는 사람입니까? 과연 크리스찬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만 합니까? 이런 질문들을 우리들 스스로에게 던지며 끊임없이 자성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23/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