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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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0-03-07 10:37 조회2,3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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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코로나19로 떠들석 합니다. 당장 지구의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연일 메스컴들은 야단법석입니다. 순식간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감염이 되고 사망에 이를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경기가 요동을 치면서 서민들의 가계경제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으로 인해 삶이 마비된 듯,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럴 때 일수록 믿음의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저께 바이블타임에서 살펴본대로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유익을 추구하며 세워주는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예민한 때 인 만큼 한 마디 말도 사려깊게 함으로써 상처주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 마디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서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오늘같이 어수선하고 민심이 흉흉한 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담고 묵상하며 가는 길의 등불 삼아야 할 말씀 중의 하나가 누가복음 10장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던진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남을 망가뜨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유익을 얻고자 종교를 이용한 셈입니다. 오늘날도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사이비 집단들로 인해 야기되는 악과 피해가 만연해 있지요.
그 질문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본질을 언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어쩌면 당황했을 그 율법사가 이웃이 누구냐고 재차 질문했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이야기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 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주었다는 내용인데, 그에 앞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보고 그냥 지나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지혜와 도전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자가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힘들때 옆에 있어주는 이가 진정한 이웃입니다. 둘째,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피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줘서는 안될” 모든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다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들의 종교가 그것을 금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것처럼 취급함과 동시에 시체를 만지면 안된다는 율법조항을 들이대면서 스스로를 정당화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인종적 차별을 당하고 민족적 증오감이 뼈속에까지 사무쳐 있었을 사마리아인 앞에 그렇게 상종하기 싫어하던 유대인이 길가에 쓰러져 있을 때, 합리적인 판단은 모른척 하는 것이고 타당한 행동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앓고 있는 이 땅이 강도만난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인과 과정 가운데 얽히고 섥힌 많은 말들을 하면서 비난이나 염려나 해결책에 대해서 또다른 많은 말들을 할 수 있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사마리아 사람과 나머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차이는 ‘긍휼히 여김’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마리아인으로 하여금 모든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픔을 보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강도만난 사람이 유대인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그것이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며 상처받은 사람이 자기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럴리야 만무하겠지만 ‘하나님의 뜻이면 누군가가 도와주어 살 것이다’고 말도 안되는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이 자기와 같은 동족인지 아니면 철천지 원수인 유대인인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바로 응급처치를 해주었고 주막에 데리고 가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현장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보처럼 뛰어들었습니다.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았을 텐데...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 교회가 선한 사마리안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히 큰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어려움 당하는 본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이비집단인 신천지 교인들 중 감염된 이들의 쾌유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루 속히 그곳에서 나와 바른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의료진들을 위해서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떠나서 위정자들이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체력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마스크를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그만 사거나 여분이 있는 사람은 나누어주자는 운동이 서시히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 격려하며 세워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지나갈 것입니다. 이겨낼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워질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