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친교에 대한 저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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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4-09-29 15:04 조회1,8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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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가 가진 좋은 “문화” 중의 하나는 주일 친교라고 생각합니다. 예배 후 교우들이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자녀들에게도 물려줄만한 귀한 유산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함께 밥을 먹을 때 “정”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은 대단히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외국인을 볼 때 관심이 가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예식적으로 따져봐도 사실 성만찬은 원래 정식 식사였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약식으로 하지만 원래는 풀코스를 갖춘 식사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교회생활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사도행전에도 교우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는 일과 기도하는 일 못지않게 교제와 떡을 떼는 일에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둘째, 우리가 처한 이민자의 상황 속에서 자칫 상실되기 쉬운 소속감을 되찾는 일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가정의 일원이고 또 목장의 일원이지만 슈가로프한인교회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환경은 그 일원됨의 자각이나 의무 그리고 특권을 잃어버리게 하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 (among us), 즉 우리의 만남과 관계 가운데 임하는데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리를 너무도 쉽게 고립된 자리로 내몰고 만다는 것입니다. 주일친교는 그나마 이런 취약점을 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셋째, 우리 교회가 추구해왔고 또 그렇게 계속 추진하려고 하는바, 위의 두 가지 큰 잇점을 살림과 동시에 선교일에도 힘을 보태는 또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의 일부를 우리가 먹는 일에 사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할수만 있다면 먹는일만큼은 우리가 드린 헌금 즉 교회의 재정으로 충당하지 않고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친교음식을 식권을 내고 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담임목사인 저의 신앙관이고 목회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믿기로는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른 청지기관입니다.
지난 약 2년동안 우리교회는 그렇게 식권을 사서 점심식사를 해왔습니다. 물론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실적”이 썩 좋은 것은 아닙니다. 평균치로 보면 약 절반가량의 실적만을 올렸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우들이 이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또는 습관이 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적에 상관없이 우리 교회는 당초에 계획했던대로 선교비를 충실하게 지출했습니다. 그러니까 친교음식을 통해 수입이 50%만 들어왔어도 선교비 지출은 100%를 집행한 것입니다. 그대신 우리가 세운 다른 사역계획을 집행하는 일에는 차질이 생겼지만요.
오늘이 회계년도 마지막 주일이고 다음 주일부터 새로운 회계년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일을 할 것입니다. 동기가 거룩하고 우리가 감당하기에 그리 큰 어려움이 없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쓰고 배려한다면 언짢을만큼 귀찮은 일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특성상 거의 자율에 맡기고 식권제도를 운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오늘 이 지면을 통해서 제가 “총대”를 메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끼워드린 별지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은 은혜롭게 잘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덧붙여 한가지 제안을 드린다면, 헌화대신 친교로 지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원래의 계획대로 강단에 나무와 화분의 꽃을 사용하면 강단을 매주마다 꽃꽃이로 장식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 비용을 친교비로 지정을 해주시면 친교음식의 일부 혹은 전부 (몇몇분이 함께 하실 경우)를 충당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교우들이 그 주일은 식권없이 식사를 하실 수 있는 잇점이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일과 함께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을 때의 상황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은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첫째, 함께 밥을 먹을 때 “정”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은 대단히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외국인을 볼 때 관심이 가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예식적으로 따져봐도 사실 성만찬은 원래 정식 식사였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약식으로 하지만 원래는 풀코스를 갖춘 식사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교회생활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사도행전에도 교우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는 일과 기도하는 일 못지않게 교제와 떡을 떼는 일에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둘째, 우리가 처한 이민자의 상황 속에서 자칫 상실되기 쉬운 소속감을 되찾는 일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가정의 일원이고 또 목장의 일원이지만 슈가로프한인교회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환경은 그 일원됨의 자각이나 의무 그리고 특권을 잃어버리게 하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 (among us), 즉 우리의 만남과 관계 가운데 임하는데 우리의 삶의 현장은 우리를 너무도 쉽게 고립된 자리로 내몰고 만다는 것입니다. 주일친교는 그나마 이런 취약점을 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셋째, 우리 교회가 추구해왔고 또 그렇게 계속 추진하려고 하는바, 위의 두 가지 큰 잇점을 살림과 동시에 선교일에도 힘을 보태는 또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의 일부를 우리가 먹는 일에 사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할수만 있다면 먹는일만큼은 우리가 드린 헌금 즉 교회의 재정으로 충당하지 않고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친교음식을 식권을 내고 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담임목사인 저의 신앙관이고 목회철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믿기로는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른 청지기관입니다.
지난 약 2년동안 우리교회는 그렇게 식권을 사서 점심식사를 해왔습니다. 물론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실적”이 썩 좋은 것은 아닙니다. 평균치로 보면 약 절반가량의 실적만을 올렸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우들이 이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또는 습관이 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적에 상관없이 우리 교회는 당초에 계획했던대로 선교비를 충실하게 지출했습니다. 그러니까 친교음식을 통해 수입이 50%만 들어왔어도 선교비 지출은 100%를 집행한 것입니다. 그대신 우리가 세운 다른 사역계획을 집행하는 일에는 차질이 생겼지만요.
오늘이 회계년도 마지막 주일이고 다음 주일부터 새로운 회계년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일을 할 것입니다. 동기가 거룩하고 우리가 감당하기에 그리 큰 어려움이 없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쓰고 배려한다면 언짢을만큼 귀찮은 일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특성상 거의 자율에 맡기고 식권제도를 운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오늘 이 지면을 통해서 제가 “총대”를 메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끼워드린 별지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은 은혜롭게 잘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덧붙여 한가지 제안을 드린다면, 헌화대신 친교로 지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원래의 계획대로 강단에 나무와 화분의 꽃을 사용하면 강단을 매주마다 꽃꽃이로 장식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 비용을 친교비로 지정을 해주시면 친교음식의 일부 혹은 전부 (몇몇분이 함께 하실 경우)를 충당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교우들이 그 주일은 식권없이 식사를 하실 수 있는 잇점이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일과 함께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을 때의 상황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은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