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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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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6-02-21 15:30 조회1,6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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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도르’ (matador)라는 스페인어는 소를 유인한 뒤 정수리를 찌르는 투우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이 한글로는 ‘마타도어’로 음역이 되었는데, 흑색선전 즉 사실무근의 내용들을 만들고 전하여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선거전략을 가리킵니다.  민주주의 대부 국가라고 하는 미국에서의 선거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경선을 보면서 착잡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속한 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기 위해 어제의 동지를 짓밟으면서 자기를 내세우는 모습이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도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없고 철없는 어린아이들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아니면 말고”식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깍아내리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암만 좋게 보려고 해도 성경의 가르침과는 너무 동떨어졌다고 밖에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라는 말씀대로는 아니어도, 중상모략에 가까운 선거전략은 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선거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문화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자세로 성도답게 살아야 할찌 한번쯤 고민해보자는 말씀들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물들기 쉽고 일단 빠지고 나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것이 교만의 함정입니다.  슬프게도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그런 함정이 도처에 널려 있는 미국 땅에서 살아가면서 교만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소개해드린대로 겸손한 사람은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비해서 대단히 겸손한 사람은 ‘나는 교만한 사람이다’고 고백합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하며 못말리게 교만한 사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학식이 있다던지, 집안이 좋다던지, 자식이 높은 지위에 있다던지, 하다 못해 돈이라도 좀 있다던지...


하지만 어찌 그런 것들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어주는 근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자신을 비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삶의 시작이 말 구유에 누이심이며 끝이 십자가라면, 적어도 그 분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슈바이처박사의 삶은 참 겸손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그 당시 신학계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적 색채가 농후했지만 삶에 묻어난 신앙인품은 우리들을 크게 도전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 그리고 벌여놓은 아프리카에서의 의료선교 사역에 자금이 많이 부족할 때 모금을 위해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환영인파를 이루어 기차역에서 슈바이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기차가 역에 도착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차의 맨 앞 1등실 앞에서 슈바이처의 모습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2등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 맨 끝에 붙은 3등실에 타고 있던 슈바이처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박사님께서 3등 객실에 타고 오셨습니까?”  그 때 슈바이처 박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게요. 4등객실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조국의 국회의원 선거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나 일터에서나 이런 겸손한 고백과 실천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 보여지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를 통해 높은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메꾸어지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