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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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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1-11-13 10:37 조회9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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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아틀란타의 단풍이 절정에 이른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울긋불긋 한 것이 하나님께서 물감을 흐르는 바람 결에 풀어 놓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앞 마당과 뒷마당에도 그리고 오고 가는 길에도 서 있는 나무들이 형형색색 다 한마디씩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구제사역의 일환으로 난민촌에 쌀 배달하러 다녀왔습니다.  운전하고 배달하는 일까지 혼자 도맡아 하시는 분에게 조금이라도 격려가 될까 싶어 동행했던 것인데요, 가던 하이웨이 85번 남쪽 방향에 심한 정체 현상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제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려서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아주 천천히 스치고 지나가는 차창 밖의 풍경이 지루함을 싹 가시게 해 주었습니다.  


전날 밤 가을비 답지 않게 쏟아진 폭우로 묵은 때가 다 씻겨서인지 나뭇잎에 쏟아지는 햇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길가의 나무들이 그날따라 더  아름답게 여겨졌던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길가의 나무들이 갑자기 고맙고 위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길가의 나무들은 어쩌다가 고속도로 옆에 태어나서 평생을 소음과 공해를 온 몸으로 받으며 살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요, 깊은 산 속에서 태어나 평생을 지고하게 살아가는 다른 나무들을 생각하니 그 안스러움은 더 깊어갔습니다.  하루종일 매연을 뿜어대며 지나가는 자동차 숫자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한 나무들이 공기와 소음 청소기 역할을 감당해왔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고맙고 커다란 존재감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는 길가의 나무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숲속의 나무 같은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질문 앞에서 비껴가지 못한다면, 그래서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면, 어느 쪽 대답이 더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길가의 나무와 같은 사람은 마치 매연과 소음을 뿜어내며 쉴새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온 몸으로 받아내는 나무처럼 사람들의 부족함을 탓하거나 그들 때문에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부족한 것을 말없이 채워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이겠지요.


물론 산속의 나무가 가진 소중함도 길가의 나무 못지 않습니다.  울창한 숲의 나무들은 서로 서로의 뿌리가 엉키고 설켜서 서로를 세워줍니다.  그렇게 엉켜 있는 울창한 숲의 나무들은 지구의 허파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지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그 일을 사명처럼 행해 나가기도 하고요.


결국 길가의 나무가 되었건 숲 속의 나무가 되었건 모두가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곳에 서 있어 주고 분주한 일상에 젖어 까마득하게 자신들을 잊고 사는 인간들에게 시절을 따라 단장하며 변함없이 반겨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자신들이 없으면 지구는 황량한 사막과 광야로 변할텐데도 공치사하며 자신들을 드러내거나 생색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들의 할 일만 하지요.   


이제 차가운 바람이 불고 태양빛이 봄철이나 여름철 같지 않아 차가워지는 땅을 잎사귀를 이불삼아 덮어주려 자신들을 기꺼이 내어주는 나무들은 2천여년 전 나무에 달리셨던 유대인의 목수 청년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썩어지는 그 잎사귀들은 새 봄에 새 잎사귀로 태어날 것입니다.


지난 주 목회자 칼럼에서 처럼 오늘도 가을 시 한 수를 소개해 드립니다.  홍수희 시인의 “낙엽 한 잎”입니다.


나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낙엽 한 잎 떨어질때마다

여윈 가지 부르르 전율합니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무수한 것들

비단 나무에게만 있겠는지요

아직 내 안에 팔랑이며 소란스러운

마음 가지 끝 빛바랜 잎새들이 있습니다

저 오래된 집착과 애증과 연민을 두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말해 볼까요

물론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피 가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