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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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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2-07-13 18:20 조회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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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부활절입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삼일만에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절은 신화도 아니고 문화적 이벤트로 끝날 일도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이고 문화나 종교에 갇힐 수 없는 생명이고 복음입니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의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으로 증명되었고 십자가에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이 확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를 세상의 다른 모든 종교와 차별화 시킨 사건이고, 기독교를 종교가 아닌 복음으로 선포한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빼돌린 후 예수가 살아났다고 헛 소문을 퍼뜨렸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것은 부활 사건이 일어나자 마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무덤을 지키던 자들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시켰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의 말이 맞다고 칠 때, 과연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놓고 예수가 살아났다고 거짓말하던 제자들이 무슨 목적으로 자기들의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낙담하고 두려워 도망치고 숨어살던 그들이 무슨 용기로 두려움의 문을 박차고 길거리고 뛰쳐 나가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제자들의 이런 갑작스런 변화와 죽기까지 변함없던 태도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부활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의 목록이 나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님의 제자들, 500여 형제들,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 그리고 사도 바울등,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최소한 600여명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한 두사람이라면 서로 말을 맞춰 없던 일을 있던 일처럼 꾸밀 수 있을지 몰라도 힘없이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위해 600여명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도 예수님 생전에 믿지 않았던 동생 야고보나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그것도 모자라 교회를 잔멸하려고 날뛰던 사울이 뭐가 아쉬워서 하루 아침에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돌아섰을까요? 그들의 가치관과 살아야 할 목적을 완전히 뒤바꾼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고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 위에 세워진 생명의 종교인 것입니다. 도를 닦고 수양하여 자신을 비워냄으로 구원받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거함으로써 예수 부활 생명이 우리를 구원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누워계시지 않고 살아나셔서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신 능력으로 우리가 겪는 어떤 어려움도 물리치게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덤에 머무르는 믿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무덤에 주저앉아 절망하고 슬퍼하는 믿음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과 소망 가운데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비록 욱여쌈을 당하거나 답답한 일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거나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망하지 않는 것은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은 질그릇에 담긴 보배요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고후 4:7).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능력이 부활절을 맞아 여러분에게 더욱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이기며, 부활의 사도들로 하나님과 동역하시는 은총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