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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0-08-09 08:43 조회1,8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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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저께 아내의 부탁으로 몰 오브 조지아 부근에 간 길에 라이프웨이 책방엘 들렸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매일 한 장씩 읽으며 생명의 양식을 사모하고 있는데 필요한 책이 있을 것 같아서 잠시 들렸던 것입니다. 이 책 저책을 살피던 중 제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습니다. 빌 하이블스 목사님이 쓴 Just Walk Across the Room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그냥 방 저편으로 걸어가보십시오”라는 의미인데 부제가 ‘사람들을 믿음으로 향하게 해 주는 간단한 방법들’ (Simple Steps Pointing People to Faith”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을 주제로 다룬 책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겨우 앞 부분을 읽고 있지만 내용 중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있을 때마다 나누고 싶은 점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번 주에 나누고 싶은 점은 ‘만 발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이나 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동안에 걷는 거리를 계산해보면 대충 일만 발자국 정도를 걷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생동안 걷는 거리는 대략 십일만 오천마일가량으로 추산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단호하게 물었습니다. “Are you using your steps wisely?” “여러분은 지혜롭게 걷고 계십니까?” 물론 저자가 말하려고 했던 점은 우리의 발걸음이 “영원” (eternity)에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를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걷는 발걸음이 다른 사람들의 영생에 무슨 영향을 끼치고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저수지가 저수지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개천과 도랑을 위해 존재하며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개천과 도랑을 끼고 누워있는 논을 위해 존재하듯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모른채 누워있는 영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름아닌 바로 크리스찬 자신들임을 감안하면 우리 각자의 삶도 결국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배달되어 온 “뱁티스트 뉴스” 신문에 저에게 침례를 주시고 저를 남침례신학대학원에 가도록 영향을 주신 조효훈 목사님의 칼럼이 실려 있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 글에서 목사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할 때 자신이 목사임을 처음부터 밝힘으로써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효과는 그렇게 목사의 직함을 밝힘으로써 그 순간부터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는 것과 둘째는 상대방에게 신앙적 대화의 문호를 열어준다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대하면서 목사만 그럴게 아니라 모든 크리스찬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처음보는 사람에게 소개할 때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또는 직분자임을 교회 이름과 함께 떳떳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크리스찬의 모습이고 다른 사람의 “영원” (eternity)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겸손히 동행하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미가6:8).
이제 겨우 앞 부분을 읽고 있지만 내용 중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있을 때마다 나누고 싶은 점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번 주에 나누고 싶은 점은 ‘만 발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이나 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동안에 걷는 거리를 계산해보면 대충 일만 발자국 정도를 걷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생동안 걷는 거리는 대략 십일만 오천마일가량으로 추산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단호하게 물었습니다. “Are you using your steps wisely?” “여러분은 지혜롭게 걷고 계십니까?” 물론 저자가 말하려고 했던 점은 우리의 발걸음이 “영원” (eternity)에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를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걷는 발걸음이 다른 사람들의 영생에 무슨 영향을 끼치고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저수지가 저수지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개천과 도랑을 위해 존재하며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개천과 도랑을 끼고 누워있는 논을 위해 존재하듯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모른채 누워있는 영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름아닌 바로 크리스찬 자신들임을 감안하면 우리 각자의 삶도 결국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배달되어 온 “뱁티스트 뉴스” 신문에 저에게 침례를 주시고 저를 남침례신학대학원에 가도록 영향을 주신 조효훈 목사님의 칼럼이 실려 있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 글에서 목사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할 때 자신이 목사임을 처음부터 밝힘으로써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효과는 그렇게 목사의 직함을 밝힘으로써 그 순간부터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는 것과 둘째는 상대방에게 신앙적 대화의 문호를 열어준다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대하면서 목사만 그럴게 아니라 모든 크리스찬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처음보는 사람에게 소개할 때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또는 직분자임을 교회 이름과 함께 떳떳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크리스찬의 모습이고 다른 사람의 “영원” (eternity)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겸손히 동행하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미가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