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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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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3-11-03 13:31 조회1,7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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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창 가득히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나무들 사이로는 하늘이 보입니다.  그리고 창 밖에 서 있는 나무 위에 칠해진 아름다운 물감들이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 사이로 난 하늘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지런히 날아가는 하얀 구름을 보고 있으면 더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렇게 감동을 주며 날아가는 구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드는 착각이 있습니다.  구름이 날아가는걸까, 나무가 달려가는 것일까?  구름이 움직이는 걸까 하늘이 움직이는 것일까?  싱거운 발상인 것을 알지만 ‘착시’처럼 ‘착상’이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정답은 하늘 높은 곳에 길을 내고 흐르는 기류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곳에 바람길을 두셔서 구름이 흘러가게 하심은 우리에게 가을을 타거나 시흥을 일으켜 시인되게 하시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사실은 하늘 아래 사는 호흡하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람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바람은 높은 하늘이나 땅 위의 나무에만 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바람은 끊임없이 붑니다.  물론 생명의 바람도 있지만 파괴시키는 바람도 있습니다.  부부관계를 망가뜨리는 바람도 있고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몸을 병들게 하는 바람도 있고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의심과 불신의 바람도 있고 미움과 증오의 바람도 있습니다.  거짓의 바람, 미혹의 바람, 사이비 짝퉁의 바람, 사기바람, 등등, 이 시대는 이런 파괴의 바람들이 얼마나 거세게 불어오는지 모릅니다.

이런 바람을 잠재우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더 쎈 바람이 불면 됩니다.  북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도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더 쎄게 불면 차가운 바람이 물러갑니다.  무풍지대는 없습니다.  폭풍전야의 짧은 고요함은 있을 수 있지만 바람잘 날은 사실 없습니다.  어떤 바람이 되었건 끊임없이 부는 것이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입니다.

성령님은 종종 바람으로 비유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21)고 말씀하신 후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20:22)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뜻하는 헬라어 원어가 ‘프뉴마’인데, 의미가 다름아니라 바로 ‘바람’입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실 때 바람같은 소리가 났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칼럼을 쓰면서 조사해보니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유행가가 있더군요.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어두운 창밖 바라보면/힘없는 내 손 잡아 주며 님은 곧 오실것 같아/저 멀리엔 교회 종소리 귓가에 들려오는데/언제 님은 오시려나 바람만 휭하니 부네/내 님은 바람이련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오늘도 잠못 이루고 어둠속에 잠기네/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

쓸쓸하고 비관적인 내용뿐입니다.  말 그대로 날 바람맞히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다릅니다.  봄바람처럼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의 바람입니다.  절망을 물리치는 소망의 바람이고 미움을 이기는 용서와 사랑의 바람입니다.  모든 의심을 잠재우는 신뢰의 바람이며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의 바람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의 가슴과 가정과 교회와 이 땅에 강하게 불어오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온갖 지저분한 모든 바람들이 물러가고 잠재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이들이 주님의 이름 앞에 무릎꿇고 경배하는 날이 임하기를 열망합니다.  참된 부흥이 이 땅에 회복되고 이루어질 때까지 성령의 바람을 등에 업고 힘차게 일어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