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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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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4-09-29 15:02 조회1,7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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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을입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여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한달에 한번 찢어내는 달력조차 며칠이 지난 후에야 허둥지둥 처리할만큼 분주하게 사는 이민자의 삶은 고달프기짝이 없습니다.  아니 이것은 비단 이민자만이 아니라 삶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장소에 상관없이 겪는 동일한 현상일 것입니다.

사실 바쁘게 산다는 건 좋은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주어진 일뿐만 아니라 이웃을 돌아보는 일까지도 짊어지고 부지런히 그리고 겸손히 그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우리 말에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있습니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행동을 가리켜 일컫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짐을 서로 지는” 일을 함께 한다면 그런 오지랖은 넓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기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장기판에서 훈수하듯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훈수하는 사람과 직접 장기를 두는 사람의 차이는 훈수를 두는 사람은 잃을 것은 없고 얻을 “개평”만 있지만, 직접 두는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을은 열매가 익어가고 수확하는 계절입니다.  결실 때가 된 열매는 속이 꽉 차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나 가지는 축 쳐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걸 가리켜 ‘겸손’이라고 평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겸손을 생각하게 해주는 계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 속에 나타난 겸손의 실체를 분주한 이민자의 삶, 유학의 삶 한 가운데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겸손은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지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랑할만한 것도 내세우지 않음은 물론이지만, 자신의 자랑스럽지 못한 것도 굳이 들춰냄으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신 주님을 가벼이 대하지 않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림이 겸손이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줌으로 사죄의 은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줌이 겸손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로 잘못 알려진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은 사실 뇌성마비 시인 김준엽의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 둔갑한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싯구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내 마음 밭에서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제가 가을을 타는 남자인가봅니다.  이런 글을 끄적이는 걸 보면.  하지만 적은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 모두도 저처럼 가을을 탔으면 합니다.  가을의 문턱에 한번쯤 기대어 서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땅도 보고...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보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