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로스쿠네오’식 예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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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4-02-02 14:43 조회2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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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에서 예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으심 받은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케 하기 위함이고,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도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엡1:6)함이며, 성령으로
인쳐 주신 것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심 (엡1:14)입니다.
바로 예배케 하심 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각자의 삶에서 사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공동체의 삶에서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로 나뉘어집니다. 개인의 일상에서 자신의 살아가는 삶을 “산제물”로
드리는 예배는 시공간에 제약 받지 않고 성령님 안에서 드리는 것이라면, 공동체가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약속된 규칙과 자발적인 의무감으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헌신이 요구됩니다. 성령님의 디자인에 맞춰 제단하고
완성해가는 노력이 매 주일, 매 예배때마다 기울여져야 합니다. 이것은 예배 인도자만이
아니라 모든 예배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이기도 합니다.
영어 단어에 ‘stale’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딱딱한’ ‘오래된’ ‘곰팡내 나는’ 등등의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보통 오래되어 신선하지 않거나 곰팡이가 낀 빵이나 음식물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서글프게도 이 단어가 성도의 예배를 묘사할
때도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신선하지 않아 주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가 사적인 예배나 공적인 예배에 버젓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불행이고 슬픔입니다.
일상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심 직한 산 제물 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 주님의 그 뜻에 사로잡혀
순종의 삶을 사는 것,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고 헌신하며 추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예배가 신선하고 부드럽고 향기나는 예배가
되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헌신하며 추구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룩한 산제물로 사는 것은 가장 우선되어야 할 필수 과목이고, 공예배에
임하는 준비된 마음과 몰입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특히 몰입하는 자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이
파란 잔디 구장에 섰을 때처럼, 골프를 좋아하는 분이 골프 카트를 타고 첫 번째 홀로
이동할 때 처럼, 낚시를 좋아하는 분이 낚시터에 도착했을 때처럼, 설렘과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는 것은 예배자들을 위해서는 물론이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소중한 요소인 것입니다. 잘 알고 계시듯이 예배를 뜻하는 헬라어
‘프로스쿠네오’가 주인의 손을 핥는 강아지의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파병되어 집을 떠났다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주인을 오랜만에 발견한 강아지가
기뻐서 펄쩍 펄쩍 뛰면서 주인의 얼굴과 손을 핥고 온 몸을 주인에게 비비면서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 그것이 예배자의 모습이어야 하고, 그 행동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광고해 드린 대로 다음 주일부터 새로운 예배 순서에 따라 ‘크로스쿠네오’식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외형적인 변화가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는 자동 공식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익숙한 순서에 따라 형식적인 예배로 전락하기
쉬운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고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임하도록 작게나마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대해봅니다. 처음에 겪게 될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여러분이
기쁨으로 감내해 주실거라고 기대해도 되겠지요? 은혜로운 예배 공동체로 더 한층
성숙해져 가기를 열망하고 기도하고 힘차게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