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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 작성일17-01-08 14:21 조회2,2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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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일어나서

며칠 전 부터 발표되는 기상예보에 촉각을 세우고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하던 중 아직도 멀쩡한 새벽에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신년 축복 특별 새벽기도회 마지막날 모임은 취소합니다!”  금요 유스그룹 모임도, 목장 축복기도 모임도, 토요일 아침 성경공부 모임도 취소했습니다.  많이 아쉬웠지만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서 결정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비가 오늘 금요일 오후에 교회 입구에서부터 아래 파킹장까지 소금을 뿌린 부목사님들의 수고에 비하면 이런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신년 축복 특새 마지막을 앞당겨 금요일 새벽에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시작과 끝맺음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서로 잘 맞아 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성경에는 이 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말씀이 있지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개역개정)는 말씀입니다.  설령 그것이 우리 생각에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일이라고 해도 우리는 끝맺음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만을 중시하며 살기 보다는 매 순간, 일을 이루어 가는 그 과정에 더 가치를 두고 ‘일상’을 ‘특별’하게, ‘평범’을 ‘비범’하게 사는 것이 지혜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비범하고 특별하게 살 수 있느냐 일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필요한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아야 하는 높은 뜻, 황홀한 목적을 찾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벽돌을 쌓는 ‘벽돌공’이 ‘미장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당을 짓는 ‘사역자’로서 임할 때 그의 삶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비상하게 될 것입니다.  (비상 – 높이 날아오름 혹은 예사롭지 않음)  


평범을 비범하게 사는 또 하나의 비결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신년이 되면 많은 결심을 하지만 말 그대로 작심 삼일로 끝나는 것은 오래 참지 못해서 입니다.  그리고 오래참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고통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라톤을 달리는 것처럼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오래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특별히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더 심합니다.  그래서 중도 하차 하는 사람이 꾸준히 달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출석하고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고, 그렇게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달리는 사람들을 길 곁에서 구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받을 상급이 보이면 신앙의 경주자요, 달리는 사람들이 보이면 구경꾼이라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의 갈림이 오래 참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만일 예수님조차도 당신의 길을 달려가시기 위해 오래 참으셨다면 우리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히 12:2)라고 예수님을 소개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 말씀 바로 앞에서 이렇게 격려하는 말을 했습니다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2상).


비록 신년 축복 특새 마지막은 예정한대로 끝맺지 못했지만, 이것도 새해 첫 주부터 쉼을 주시는 주님의 배려라고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얼음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화사한 햇빛으로 길을 안전하게 정리해 주셔서 오늘 예배하는데 어렵지 않게 해 주심도 감사했습니다.  2017년, 올 한 해에도 감사거리로 가득 채우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