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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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명천 작성일07-01-23 05:11 조회2,3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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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곳, 필라델피아를 떠나왔습니다.
지난 화요일, 짐을 싣기 시작할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스산한 가을비가 어두워지면서 우박으로 변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멀지 않은 산간지방 포코노라는 지역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이른 제설작업을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삿짐 싣기가 끝나고 그 다음 날 아틀란타로 향할 때는 늦은 가을비가 한 여름 장대비처럼 내렸습니다. 참 아주 유별난 날씨였습니다. 중간에 어머님께 들려 인사드릴 때, 이미 날은 어두웠고 어느새 비는 소슬비로 바뀌었습니다. 먼 길 떠나 보내시는 어머님의 염려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 그 날은 어머님 집에서 자고 그 다음날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말이 이삿짐 운반 트럭이지 제게는 바퀴가 18개 달린 트렉터 트레일러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 차를 운전해보기는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으니까요. 처음엔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아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우선 좌우의 차선을 침범해서 다른 차를 들이받지나 앉을까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었습니다. 그렇게 한 서 너 시간 지나고 어느덧 워싱턴 지역을 지날 때쯤부터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느껴지는 건, 다른 작은 차들이 앞뒤에서 신경 쓰게 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워낙 큰 덩치도 덩치이지만 일단은 이삿짐 트럭이다 보니 운전에 서툴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지 싶었습니다.
어쨌건 그 때부터는 앞질러 가는 다른 차들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부턴가 전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다름아니라, 다른 차들을 앞질러 빨리 갈 때는 몰랐는데, 아예 천천히 가리라, 남이 나를 앞질러 가도록 하리라 맘먹고 운전하니 그렇게 편할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아! 인생도 저럴 수 있겠구나! 여행을 하면 철학자가 된다고 누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목사다운 표현을 하자면 은혜 받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버지니아주의 수도인 리치몬드를 지나 노스케롤라이나로 넘어오는 산길을 지날 때는 길가의 단풍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단풍을 감상하며 또 철학적인 발상이 생겼습니다. 내가 지금껏 이사를 몇번이나 했던고? 그래서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올 때를 첫 번째로 해서 헤아려보니 지금까지 자그마치 11번을 했고 이번이 12번째이니까 거의 2년만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 셈입니다. 결혼 15년 동안에만도 7번 이사를 했으니까 결혼 한 후에도 역시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 인생은 이사하다가 끝나는 거로구나! 또 한 가지 대단한 깨달음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더 이사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이 땅에 온 것부터가 여행이고 이사의 반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죽는 것을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 (고후 5:1)으로 표현했는데, 참 좋은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집이 아니라 장막, 그러니까 텐트를 치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이번 여행에서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은혜를 받은 게 분명합니다.
11/3/2002
지난 화요일, 짐을 싣기 시작할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스산한 가을비가 어두워지면서 우박으로 변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멀지 않은 산간지방 포코노라는 지역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이른 제설작업을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삿짐 싣기가 끝나고 그 다음 날 아틀란타로 향할 때는 늦은 가을비가 한 여름 장대비처럼 내렸습니다. 참 아주 유별난 날씨였습니다. 중간에 어머님께 들려 인사드릴 때, 이미 날은 어두웠고 어느새 비는 소슬비로 바뀌었습니다. 먼 길 떠나 보내시는 어머님의 염려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 그 날은 어머님 집에서 자고 그 다음날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말이 이삿짐 운반 트럭이지 제게는 바퀴가 18개 달린 트렉터 트레일러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 차를 운전해보기는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으니까요. 처음엔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아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우선 좌우의 차선을 침범해서 다른 차를 들이받지나 앉을까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었습니다. 그렇게 한 서 너 시간 지나고 어느덧 워싱턴 지역을 지날 때쯤부터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느껴지는 건, 다른 작은 차들이 앞뒤에서 신경 쓰게 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워낙 큰 덩치도 덩치이지만 일단은 이삿짐 트럭이다 보니 운전에 서툴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지 싶었습니다.
어쨌건 그 때부터는 앞질러 가는 다른 차들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부턴가 전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다름아니라, 다른 차들을 앞질러 빨리 갈 때는 몰랐는데, 아예 천천히 가리라, 남이 나를 앞질러 가도록 하리라 맘먹고 운전하니 그렇게 편할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아! 인생도 저럴 수 있겠구나! 여행을 하면 철학자가 된다고 누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목사다운 표현을 하자면 은혜 받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버지니아주의 수도인 리치몬드를 지나 노스케롤라이나로 넘어오는 산길을 지날 때는 길가의 단풍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단풍을 감상하며 또 철학적인 발상이 생겼습니다. 내가 지금껏 이사를 몇번이나 했던고? 그래서 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올 때를 첫 번째로 해서 헤아려보니 지금까지 자그마치 11번을 했고 이번이 12번째이니까 거의 2년만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 셈입니다. 결혼 15년 동안에만도 7번 이사를 했으니까 결혼 한 후에도 역시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 인생은 이사하다가 끝나는 거로구나! 또 한 가지 대단한 깨달음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더 이사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이 땅에 온 것부터가 여행이고 이사의 반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죽는 것을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 (고후 5:1)으로 표현했는데, 참 좋은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집이 아니라 장막, 그러니까 텐트를 치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이번 여행에서 참 많은 것을 깨닫고 은혜를 받은 게 분명합니다.
11/3/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