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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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23 20:26 조회2,0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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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각 주에는 그 주가 갖고 있는 특성에 맞는 닉네임이 하나씩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는 종석(아치의 맨 꼭대기 돌)의 주(Keystone State)라 부르고 켄터키를 파란 잔디 (Blue Grass)의 주라고 합니다. 조지아는 복숭아의 주 (Peach State)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복숭아가 특산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 온지 반년이 넘게 복숭아나무를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 지역 특산품이라는 이곳 복숭아가 가게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지도 못했고 복숭아를 둘러싼 갖가지 행사에 대해 아직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 대신 아이러니 하게도 복숭아나무대신 지천에 널려있는 것?소나무입니다. 집 앞에도, 길거리에도, 교회 앞마당, 옆 마당 그리고 뒷마당에도 있습니다. 어디엘 가도 소나무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소나무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들은 대로 사시사철 푸른 나무로서 절개의 상징으로 알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속동화 속에서도 소나무는 항상 좋은 이미지를 풍기는데 그래서 친근감이 더 갔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소나무는 언제나 변함없고 낙엽도 없는 깨끗한 나무로 철썩 같이 믿고 살아왔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해 이 믿음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가을 잔디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소나무 잎을 발견하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무를 보면 분명 그대로인 것 같은데 밑을 보면 잔뜩 흩으러놓고는 시치미를 뚝 잡아떼는 것 같은 그런 배신감이랄지 속았다 랄지 뭐 그런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 땐 그럴 수도 있지, 사람도 약점이 있고 실수하는데 나무인 주제에 별수 있겠나 싶어 너그럽게 마음을 고쳐먹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호의를 간직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급기야 이번 봄을 지나 면서는 아주 완벽하게 담을 쌓아버렸습니다. 다른 나무들처럼 이렇다할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향기를 풍기는 것도 없이 그냥 그 꽃가루 아닌 가루를 온 천지에 뿌려대는데 이건 마치 눈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쉴 새 없이 비며대며 훌쩍거리고 재채기를 하게 하는 알레지 증상이 재발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20여 년간 다퉜던 알레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자랑했는데 어이없이 무릎꿇고 만것입니다.
옆에서 보기가 안스러우셨는지 어느 분이 위로 겸 희망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저 소나무에서 송충이 (같은 것)들이 떨어지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와, 해도 너무 한다. 저 소나무 재앙은 쉴 새없이 연속이구나. 왠 송충이! 송충이가 아니고 송충이 같은 것이 떨어지면 좀 나아질 겁니다. 그러니까 그 분의 말씀인즉슨 가루가 잔뜩 묻어있는 송충이 모양의 새 싹 같은 것이 조금 있으면 떨어진다는 것이고 그 때 가서야 알레지 증상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제나저제나 하고 송충이(같은 것)들이 땅에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가고 두 주가 가도 송충이 (같은 것)들은 구경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드디어 며칠 전부터 송충이 같은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많이도 떨어져 내렸습니다. 쓸어내고 쓸어내도 계속 떨어져 사방을 어지럽혔습니다. 대지의 살아 숨쉬는 모든 식물들은 새 것을 싹 티 우는 계절에 소나무들은 일치감치 허물을 벗으며 대지를 더럽혀댔습니다. 송충이 같은 것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송충이들도 떨어져 주차장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거였습니다. 과장하면 어느 것이 송충이 같은 것들이고 어느 것이 진짜 송충이들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황당했습니다. 아, 소나무는 참 지저분한 나무로구나!
그 때 뭔가 가슴을 치며 지나가는 조그마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너는! 네 모습은 어떠한가? 너는 주님 앞에서 저 소나무 같지는 않은가? 그랬습니다. 겉으론 지조를 지키고 절개를 자랑하는 양하고 깨끗한 척 하지만, 사실은 다른 나무처럼 아름다운 꽃이나 좋은 열매를 내는 것도 아니면서 온갖 추태는 다 피우는 저 소나무가 바로 내 모습이 아니겠나 싶었던 것입니다. 아 주님, 아름다움도, 향도 없이 어지럽히기만 하는 저는 별로 쓸모가 없군요. 차라리 이리저리 잘라 원하시는 재목으로나 사용하소서.
4/27/2003
처음엔 소나무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들은 대로 사시사철 푸른 나무로서 절개의 상징으로 알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속동화 속에서도 소나무는 항상 좋은 이미지를 풍기는데 그래서 친근감이 더 갔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소나무는 언제나 변함없고 낙엽도 없는 깨끗한 나무로 철썩 같이 믿고 살아왔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해 이 믿음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가을 잔디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소나무 잎을 발견하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무를 보면 분명 그대로인 것 같은데 밑을 보면 잔뜩 흩으러놓고는 시치미를 뚝 잡아떼는 것 같은 그런 배신감이랄지 속았다 랄지 뭐 그런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 땐 그럴 수도 있지, 사람도 약점이 있고 실수하는데 나무인 주제에 별수 있겠나 싶어 너그럽게 마음을 고쳐먹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호의를 간직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급기야 이번 봄을 지나 면서는 아주 완벽하게 담을 쌓아버렸습니다. 다른 나무들처럼 이렇다할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향기를 풍기는 것도 없이 그냥 그 꽃가루 아닌 가루를 온 천지에 뿌려대는데 이건 마치 눈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쉴 새 없이 비며대며 훌쩍거리고 재채기를 하게 하는 알레지 증상이 재발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20여 년간 다퉜던 알레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자랑했는데 어이없이 무릎꿇고 만것입니다.
옆에서 보기가 안스러우셨는지 어느 분이 위로 겸 희망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저 소나무에서 송충이 (같은 것)들이 떨어지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와, 해도 너무 한다. 저 소나무 재앙은 쉴 새없이 연속이구나. 왠 송충이! 송충이가 아니고 송충이 같은 것이 떨어지면 좀 나아질 겁니다. 그러니까 그 분의 말씀인즉슨 가루가 잔뜩 묻어있는 송충이 모양의 새 싹 같은 것이 조금 있으면 떨어진다는 것이고 그 때 가서야 알레지 증상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제나저제나 하고 송충이(같은 것)들이 땅에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가고 두 주가 가도 송충이 (같은 것)들은 구경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드디어 며칠 전부터 송충이 같은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많이도 떨어져 내렸습니다. 쓸어내고 쓸어내도 계속 떨어져 사방을 어지럽혔습니다. 대지의 살아 숨쉬는 모든 식물들은 새 것을 싹 티 우는 계절에 소나무들은 일치감치 허물을 벗으며 대지를 더럽혀댔습니다. 송충이 같은 것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송충이들도 떨어져 주차장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거였습니다. 과장하면 어느 것이 송충이 같은 것들이고 어느 것이 진짜 송충이들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황당했습니다. 아, 소나무는 참 지저분한 나무로구나!
그 때 뭔가 가슴을 치며 지나가는 조그마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너는! 네 모습은 어떠한가? 너는 주님 앞에서 저 소나무 같지는 않은가? 그랬습니다. 겉으론 지조를 지키고 절개를 자랑하는 양하고 깨끗한 척 하지만, 사실은 다른 나무처럼 아름다운 꽃이나 좋은 열매를 내는 것도 아니면서 온갖 추태는 다 피우는 저 소나무가 바로 내 모습이 아니겠나 싶었던 것입니다. 아 주님, 아름다움도, 향도 없이 어지럽히기만 하는 저는 별로 쓸모가 없군요. 차라리 이리저리 잘라 원하시는 재목으로나 사용하소서.
4/27/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