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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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23 20:25 조회2,0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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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부활절 아침입니다.
이 부활의 계절에 부활의 소망이 교우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망권세를 깨트리신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얽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참된 평화를 회복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도 새 생명의 바람이 힘차게 불어 치고 여러분의 사업 터나 일터에나 교실에도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의 어두운 곳곳마다, 병들어 신음하는 병상에도, 깨어져 상처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도, 소외된 외로움 속에서 가슴을 쓸어내는 사람들에게도, 전쟁의 포화가 할퀴고 가 무너진 곳에도 부활의 희망이 부풀어오르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부활신앙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그들의 모든 믿음이 다 헛것이 될 것이라며 죽기살기로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했습니다. 첫째는 무식하고 미신적인 촌뜨기들로서 뭔가 헛것을 본 것을 가지고 유별을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헛소문을 퍼뜨리는 음모론자들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서로 각본을 짜고 말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사람들의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은 거기에 대해 한마디도 변명하거나 변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자료들을 검토해보면 서로 모순되는 점도 많고 상대방의 비난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기록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수 십 년이 지난 후에 신약성서가 쓰여졌다는 걸 감안하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방어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는 필요와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변증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앞뒤를 꿰 맞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당시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기록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모세를 통해 구리 뱀을 장대에 달아 높이 세우게 하신 후 누구든지 쳐다보는 자는 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죽어갔던 때도 그랬습니다. 신구약에 걸쳐 나타난 하나님의 방법은 이렇게 모순투성이처럼 보입니다. 믿지 않기로 결심하면 그 결심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만한 자료들이 성경 안팎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그만큼 더 귀한 줄 믿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 16:6). 그렇습니다. 살아나셨기에 거기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분은 살아계시기에 그냥 있는 그 대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랬기에 더 이상의 군더더기 설명이나 변증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렇게 오늘도 우리에게 유효하시고 그 믿음의 공식 안에서 능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이 여러분의 가슴과 가정에 벅찬 감격으로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Happy Easter!
4/20/2003
이 부활의 계절에 부활의 소망이 교우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망권세를 깨트리신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얽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참된 평화를 회복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도 새 생명의 바람이 힘차게 불어 치고 여러분의 사업 터나 일터에나 교실에도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의 어두운 곳곳마다, 병들어 신음하는 병상에도, 깨어져 상처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도, 소외된 외로움 속에서 가슴을 쓸어내는 사람들에게도, 전쟁의 포화가 할퀴고 가 무너진 곳에도 부활의 희망이 부풀어오르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부활신앙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그들의 모든 믿음이 다 헛것이 될 것이라며 죽기살기로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했습니다. 첫째는 무식하고 미신적인 촌뜨기들로서 뭔가 헛것을 본 것을 가지고 유별을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헛소문을 퍼뜨리는 음모론자들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서로 각본을 짜고 말을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사람들의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은 거기에 대해 한마디도 변명하거나 변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자료들을 검토해보면 서로 모순되는 점도 많고 상대방의 비난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기록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수 십 년이 지난 후에 신약성서가 쓰여졌다는 걸 감안하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방어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는 필요와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변증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앞뒤를 꿰 맞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당시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기록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모세를 통해 구리 뱀을 장대에 달아 높이 세우게 하신 후 누구든지 쳐다보는 자는 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죽어갔던 때도 그랬습니다. 신구약에 걸쳐 나타난 하나님의 방법은 이렇게 모순투성이처럼 보입니다. 믿지 않기로 결심하면 그 결심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만한 자료들이 성경 안팎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그만큼 더 귀한 줄 믿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 16:6). 그렇습니다. 살아나셨기에 거기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분은 살아계시기에 그냥 있는 그 대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랬기에 더 이상의 군더더기 설명이나 변증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렇게 오늘도 우리에게 유효하시고 그 믿음의 공식 안에서 능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이 여러분의 가슴과 가정에 벅찬 감격으로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Happy Easter!
4/20/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