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생긴 또 하나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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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23 20:54 조회1,9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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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두 귀가 항상 열려있어서 모든 소리를 다 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들리는 소리는 따로 있는 것이라고요. 이해할 수 있는 소리, 관심있는 소리, 무의식속에라도 어딘가 접촉점이 있는 소리만이 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도 마찬가지랍니다. 물론 촛점만 맞으면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다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기억에 남고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듣거나 보는 일을 할 때만 비로소 들리고 보이는 것입니다.
일년전 본당 수리를 하면서 한동안 습관이 붙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니라 음식점이건 다른 교회 예배당이건 어느 건물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천정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조명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본당 수리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조명설치를 하는게 “장난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는 분 말에 의하면 조명하는 것만 가지고도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쨋든 그런 유여곡절끝에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선에서 조명설치를 한 것이 지금 우리의 현 모습입니다.
그렇게 습관처럼 천당쳐다보기가 조명설치 마무리와 함께 사라졌는데 얼마부터인가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이 붙었습니다. 운전하면서 교회나 빈 창고나 땅이 어디 있나 하고 살피는 버릇입니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 아무도 없는 교회 주차장에서 갖가지 생각에 잠긴 적도 여러번입니다. ‘교회 부지로 이런 땅이면 참 좋은데’라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않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셨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행동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도록 보내시면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 중, 앞부분인 “뱀처럼 지혜로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비신자를 전도해서 교회에 인도하려 할 때 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특별히 하루 하루를 기계처럼 빈틈없이 살고 바쁘고 힘들게 사는 교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 거리가 가진 비중은 상상을 초월한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가끔 목회를 낚시차원에서 비교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신 것만 봐도 주님의 사역과 낚시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낚시하면서 무시하면 큰 코 다치는 점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소입니다. 물고기는 물 때와 물의 온도와 물의 상태 또는 시절에 따라 항상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러한 컨디션을 감안해서 낚시하지 않으면 미끼나 기술이나 낚시도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헛탕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구체적으로 시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저를 포함해서 모든 안수집사님들, 운영위원 집사님들, 그리고 거의 모든 교우님들의 마음에 제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부담감이 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목사입니다.
하지만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씀을 영혼구원하는 일과 연관해서 하셨다는 점을 우리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손을 펼쳐서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와야 할 영혼들은 비신자들이지 이미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비신자들에게 우리가 있는 이 곳으로 오라고 하지 말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 바램은 모든 교우님들이 저 처럼 운전하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보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간절히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어치피 이 일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년전 본당 수리를 하면서 한동안 습관이 붙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다름아니라 음식점이건 다른 교회 예배당이건 어느 건물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천정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조명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본당 수리를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조명설치를 하는게 “장난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는 분 말에 의하면 조명하는 것만 가지고도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쨋든 그런 유여곡절끝에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선에서 조명설치를 한 것이 지금 우리의 현 모습입니다.
그렇게 습관처럼 천당쳐다보기가 조명설치 마무리와 함께 사라졌는데 얼마부터인가 또 하나의 새로운 습관이 붙었습니다. 운전하면서 교회나 빈 창고나 땅이 어디 있나 하고 살피는 버릇입니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 아무도 없는 교회 주차장에서 갖가지 생각에 잠긴 적도 여러번입니다. ‘교회 부지로 이런 땅이면 참 좋은데’라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않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셨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행동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도록 보내시면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 중, 앞부분인 “뱀처럼 지혜로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비신자를 전도해서 교회에 인도하려 할 때 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특별히 하루 하루를 기계처럼 빈틈없이 살고 바쁘고 힘들게 사는 교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 거리가 가진 비중은 상상을 초월한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가끔 목회를 낚시차원에서 비교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며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신 것만 봐도 주님의 사역과 낚시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낚시하면서 무시하면 큰 코 다치는 점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소입니다. 물고기는 물 때와 물의 온도와 물의 상태 또는 시절에 따라 항상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러한 컨디션을 감안해서 낚시하지 않으면 미끼나 기술이나 낚시도구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헛탕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구체적으로 시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저를 포함해서 모든 안수집사님들, 운영위원 집사님들, 그리고 거의 모든 교우님들의 마음에 제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부담감이 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목사입니다.
하지만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씀을 영혼구원하는 일과 연관해서 하셨다는 점을 우리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손을 펼쳐서 주님 앞으로 데리고 나와야 할 영혼들은 비신자들이지 이미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비신자들에게 우리가 있는 이 곳으로 오라고 하지 말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 바램은 모든 교우님들이 저 처럼 운전하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보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간절히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어치피 이 일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