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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날 둥지 위로 날아가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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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1-23 21:02 조회2,2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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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고향 집 정원에는 자그마한 키의 무궁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 어느 해인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습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너무도 기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가까이 가서 새 알을 만져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이 부화하여 새끼가 되고 자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 때의 감흥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뒷 뚤 조그마한 나무가지 사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길렀던 카디날스라고 하는 빨간 새가 금년에도 찾아왔을 때 그 기쁨이 바로 어릴적 경험했던 그 기쁨과 아주 흡사한 것이었습니다. 작년의 그 어미새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새끼 새인지, 그것도 아니면 지나가던 새가 빈 집을 제 집 삼아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겟지만 어쨌든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불이나케 둥지에 들락거리던 새가 갑자기 언제부터인가 모습이 뜸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자취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출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금새 그 원인을 생각해 냈습니다. 몇 주 전 볼상 사납게 된 집 주위의 나무들을 손질하면서 둥지가 있는 바로 그 나무도 손을 봤는데 십중 팔구 그 때 놀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곤 ‘믿을 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한탄하며 집을 나갔겠지요.

그러나 휑하게 빈 썰렁한 둥지를 바라보면 섭섭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자기 집을 보호하고 생각해 주느라 전기 톱에 내 손가락이 뭉개지기까지 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가?” 생각하면 괘씸한 맘도 듭니다. 그 날 나무를 손질하면서 둥지를 다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다가 되려 돌아가는 전기 톱에 내 오른 손 검지가 닿으면서 다쳤거든요.

제가 이 일을 통해 깨달은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미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나를 향해 씁쓸해 하실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 분은 나를 위해 그 모진 고난을 다 당하셨는데 내가 사는 모습은 말 그대로 ‘꼬라지’ 수준에 머물고 있으니 그 분이 얼마나 섭섭해 하실까?” 그런 생각 말입니다. 찬송가에도 그런 가사가 있잖습니까?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둥지위로 날아가버린 카디날이 이 봄에 제게 준 깨달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