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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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0-06-20 14:10 조회2,2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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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핸드폰이 보편화된 요즘 세상에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집집마다 한 대씩 있던 전화를 온 가족이 사용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실화인지 지어낸 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내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떤 분이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예, 수철인데요”
“그래, 너 잘 있었나, 아버지 계시나?”
“예, 계십니다”
“그럼 아버지 바꿔라”
“아버지 못 바꿉니다”
“왜, 어디 아프시냐?”
“아니요”
“그럼 화장실 가셨나?”
“아니요”
“그러면 아버지 바꿔”
“아버지는 못 바꿉니다”
“너 어른과 장난치는 거야!”
“아니요”
“그럼 왜 안 바꿔, 빨리 아버지 바꿔”
“안됩니다”
“이놈이, 요 고약한 놈이네, 빨리 바꿔”
“죽어도 아버지는 못 바꾼단 말이요”
“뭐가 어째, 못 바꾼다고? 왜?”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바꾼단 말이오…”
아버지날이라고 해서 썰렁한 아재 개그를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진한 감동을 주는 뼈있는 글이라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이민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위상이 이전같지 못하다는 정서가 모든 이들의 생각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들면 특별한 예를 제외하고 거의 대다수의 이민가정에서 실세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입니다. 실세라 함은 이곳에서 정착하는데 있어서 설바이벌 본능에서나 실제 능력에 있어서 적어도 한인가정에서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의미입니다. 언어구사능력에서도 그렇고 적응능력에서도 그렇고 정신력에서도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전에 하던 가락을 살려 아내들에게 큰 소리쳐보는 남편들도 있지만 ‘간이 배 밖에 나온 무모한 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본인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요.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코리안 어메리칸 이민 가정의 현실이기에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조금은 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함께 손 잡고 한 방향을 향해 같이 걸어가는 부부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가장 절실히 요구되고 효과 만점인 지혜는, 서로서로 나보다는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80년 넘게 해로한 영국의 최장수 부부가 그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100살이 넘은 그 할머니는 아내로서 그녀의 남편에게 늘 “미안해요, 여보” 라는 말을 사용하기에 절대로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역시 100살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는 남편으로서 그의 입에 늘 “Oh, dear! Yes, dear!” (“그래 여보, 맞아요 여보!) 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너무도 평범한 것 같고 별 의미없는 표현같이 들리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말 속에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이나 마음의 아픔, 의욕 등등 수시로 일어나고 변하는 내면에 민감하게 배려해주는 태도가 잘 나타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성경은 서로를 존중해 주되 남편은 자기 목숨을 다해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높여주라고 가르쳐줍니다. 즉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는 가르침입니다. 복종이란 남의 권위를 내 것보다 더 존중한다는 뜻이며 피차라고 했으니 서로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할 강력하고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즉 우리가 적어도 크리스찬이라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가정이 무너짐과 가정에서의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권위가 무너짐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잠언 말씀 묵상을 함께 나누는 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특별히 아버지날을 맞아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해 성경적으로 조명해보고 실천하는 은총이 우리 슈가로프 온 가정에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요즘같이 안팎으로 힘든 시기를 가정을 건실하게 세워주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아버지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