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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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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0-06-06 14:51 조회2,3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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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쥐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증세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도무지 치료가 안돼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담당 의사가 당신은 쥐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난감해 하던 의사가 치료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쥐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드디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변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쥐가 아니라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렇군요.  내가 마침내 쥐의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사람이 되었군요.”

 

청년은 병이 완치돼 당당히 병원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 청년이 황급히 뛰어들어왔습니다.  “선생님, 병원 바로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어요.”  담당의사가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쥐가 아닙니다. 당신은 변화되었어요.  그럼으로 고양이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자 청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고양이도 그 사실을 알까요?  제가 더 이상 쥐가 아니라는 사실을?”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퍼온글입니다.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큰 교훈이 담겨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바이블타임에서 묵상하고 있는 갈라디아서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목숨 값으로 죄에서 자유롭게 된 예수님 짜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고귀하신 희생의 댓가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존재들이기에, 우리들 배후에 계시는 하늘 아버지로 인해 간이 배밖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마치 여호수아와 갈렙이 신장이 장대같은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도 다른 정탐군들처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13:33)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는 말을 겁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다른 열 명의 정탐군들의 모습은 고양이를 보고 질겁을 한 그 청년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에게 비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돌아가는 힘든 상황을 보고 그렇게 절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젊은 사자가 고양이 앞에서 꼬리를 내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사람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바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증거합니다.  쥐에서 사자로 바뀐 거라고 비유를 들어도 될 법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쥐의 습성이 아니라 사자의 습성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대조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도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 (갈 5:19-21)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의 특성이었다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는 성령의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에 넷 째 아들이 유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은 바로 이 유다 지파의 계보에서 탄생하셨지요.  그런데 야곱이 유언을 남기면서 자식들에게 복을 빌어줄 때 유다에게는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창 49:9)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사자 새끼”는 “젊은 사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유언은 예언처럼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위용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은 곧 쥐에서 사자로 바뀐 것 같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잘 묘사해주는 말씀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많이 어렵고 힘이 드는데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이 불투명 투성이다 보니 우리 스스로 사자의 모습에서 쥐의 모습으로 격하시키기 쉽습니다.  홍해 앞에서 울부짖던 군중 속에 내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어려움 속에서 가나안을 향한 말씀 여정을 계속 하는 동안 우리 모두가 사자로서의 용맹함과 능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