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light Saving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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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solee 작성일14-03-09 14:20 조회1,6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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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시간 절약제” 또는 흔히 말하는 ‘섬머타임’이 오늘 시작되었습니다. 요즘같이 일상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는 첨단 과학 기술로 인해 얽히고 섥여 예민한 기계문명 시대에 일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간을 임의로 당기고 늦추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로서는 대단히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이 제도를 실행하지 않는 세계 대다수의 나라들이 이 시간대에 맞춰 미국을 대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위상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역사 이래 그 어떤 강대국이나 천하를 호령했던 위인이나 그 누구도 하루의 24시간 자체를 줄이거나 늘리지는 못했습니다. 그 어떤 과학자나 발명가도 단 1분을 만들어 내거나 발명하지 못했습니다. 세계 제일가는 부자라 해도 단 1초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유사 이래 이 땅에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한 시도 멈춤이 없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갑니다. 어느 글에 보니 이 점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20년이 지나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나한테 그 동안 아내와 두 자녀가 생겼습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인 셈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춘곤을 못이겨 잠깐 꿈을 꾼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잠깐 졸고보니 40세이고 또 한번 졸다보면 60세요 80세가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다보면 종점에 다 왔으니 내리라고 합니다. 순간의 판단착오나 게으름 때문에 보람있는 일을 하나도 못하고 하차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활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기회가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한번 가버린 기회는 여간해서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90:4)고 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고 했습니다.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고 신속히 날아가는데 촌음을 아껴 살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큰 인물이었던 크리소스톰은 “마치 부잣집에 강도가 들어 왔을 때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생명을 사는 것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불하라”는 말로 크리스찬의 바람직한 삶을 설명했습니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가 똑같이 탄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부귀영화의 상징이 되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비해 보잘것 없는 숯덩이에 머물고 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그리고 하루 24시간이라는 원소.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되느냐 숯이 되느냐는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삶은 다이아몬드라는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통째로 선물하지 않습니다. 가꾸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숯이 될 것입니다.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24시간을 24시간으로 활용하는 사람, 심지어는12시간으로 밖에 활용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과 맡겨주신 기회에 따라 하루를 48시간으로 산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이지만 하나님께서 건강도 주시고 기회도 주셨지만 본전치기나 밑지는 인생을 산다면 불충성하는 무익한 자라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빅토리아 대학 전 총장 알렉스 혼이 했던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낡아서 없어지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닳아서 없어지는 삶을 살겠다.”
시작되는 섬머타임 앞에서 제 마음에 다가온 도전에 새롭게 결단하며 받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역사 이래 그 어떤 강대국이나 천하를 호령했던 위인이나 그 누구도 하루의 24시간 자체를 줄이거나 늘리지는 못했습니다. 그 어떤 과학자나 발명가도 단 1분을 만들어 내거나 발명하지 못했습니다. 세계 제일가는 부자라 해도 단 1초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유사 이래 이 땅에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한 시도 멈춤이 없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갑니다. 어느 글에 보니 이 점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20년이 지나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나한테 그 동안 아내와 두 자녀가 생겼습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인 셈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춘곤을 못이겨 잠깐 꿈을 꾼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잠깐 졸고보니 40세이고 또 한번 졸다보면 60세요 80세가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다보면 종점에 다 왔으니 내리라고 합니다. 순간의 판단착오나 게으름 때문에 보람있는 일을 하나도 못하고 하차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활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기회가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한번 가버린 기회는 여간해서 다시 찾아오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90:4)고 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고 했습니다.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고 신속히 날아가는데 촌음을 아껴 살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큰 인물이었던 크리소스톰은 “마치 부잣집에 강도가 들어 왔을 때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생명을 사는 것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불하라”는 말로 크리스찬의 바람직한 삶을 설명했습니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가 똑같이 탄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부귀영화의 상징이 되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비해 보잘것 없는 숯덩이에 머물고 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 그리고 하루 24시간이라는 원소. 그러나 다이아몬드가 되느냐 숯이 되느냐는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삶은 다이아몬드라는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통째로 선물하지 않습니다. 가꾸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숯이 될 것입니다.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24시간을 24시간으로 활용하는 사람, 심지어는12시간으로 밖에 활용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과 맡겨주신 기회에 따라 하루를 48시간으로 산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이지만 하나님께서 건강도 주시고 기회도 주셨지만 본전치기나 밑지는 인생을 산다면 불충성하는 무익한 자라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빅토리아 대학 전 총장 알렉스 혼이 했던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낡아서 없어지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닳아서 없어지는 삶을 살겠다.”
시작되는 섬머타임 앞에서 제 마음에 다가온 도전에 새롭게 결단하며 받은 깨달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