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반드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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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1-01-23 16:33 조회1,7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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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민족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던 저항 시인 이상화가 겨우 스물 다섯의 나이로 지었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푸른 웃음과 푸른 설움을 대조해 가며 빼앗긴 국권 회복에 대한 부푼 기대와 막막한 현실로 인한 절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두 개의 감정이 묘한 대조를 이어가는 시 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질문에 시인이 제시했던 대답은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였습니다. 그러니까 국토만이 아니라 희망 자체조차 잃어버릴 것 같은 현실을 안타까워한 것 같습니다.
지난 일년 가까운 세월이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빼앗긴 것 같아 억울해 하고 정부의 리더들에게 울분을 토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있었던 한국의 총선 때나 이번의 미국 대선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할만큼 질병 퇴치 이슈는 엄청난 영향력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그러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시고 인간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빼앗김과 다시 찾음, 겨울과 봄을 가능케 하십니다. 구약의 한 시인의 고백 속에 우리의 살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146:3-5, 한글개역).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바울의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라는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좋습니다. 야곱같은 사람까지도 도우셨던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제시하는 도움 받는 사람의 자격 커트라인이 엄청 낮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 8:32)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빼앗긴 들에 반드시 봄이 올 것입니다. 지헤롭게 예방하고 대처하되 믿음과 정신이 절망의 줄에 얽메이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 예배와 말씀과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외부활동을 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몸이 허약해지듯이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2월 첫주부터 있을 153제자대학에도 등록하시고 바이블타임을 통해 매일 영의 양식도 잡수시고, 약속의 말씀 붙들고 기도하여 응답도 쌓아가시며,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시간들이 모여 봄의 찬란함을 지금 여기에서 맛보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