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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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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20-09-12 14:58 조회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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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이던 두 천사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한 부자의 집에서 멈추었습니다. 그 가족은 몹시 무례 했고, 그 천사들이 자신들의 저택에 있는 손님방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천사들에게 아주 차가운 지하실의 조그만 방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천사들이 딱딱한 바닥에 잠자리를 만들 때, 나이든 천사가 벽에 있는 한 구멍을 보았고, 그것을 수리했습니다. 그것을 본 젊은 천사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나이든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항상 같지는 않다네”

 

다음날 저녁, 그 천사들은 비록 몹시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그들을 대접하는 한 가난한 농부와 그의 아내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아주 보잘것 없는 저녁을 함께 나눈 뒤, 그 천사들은 아주 편안한 하룻밤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올랐을 때, 천사들은 그 농부와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부부에게 우유를 제공했고, 그것을 통해 그나마 작은 소득을 안겨주었던, 하나밖에 없었던 젖소가 들판에서 죽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젊은 천사는 불같이 화가 나서 왜 이런일이 생기도록 내버려 두었는지 나이든 천사에게 따졌습니다. “첫번째 그 부자는 모든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를 도왔죠. 두번째 그 가난한 부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들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젖소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항상 같지는 않다네.” 나이든 천사가 이렇게 다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그 저택의 지하실에 머물렀을 때, 난 벽에 뚫린 구멍에 숨겨져 있던 금을 보았지. 그 부자는 너무나 탐욕스러웠고 또 그가 가진 것을 나누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자가 그것을 찾을수 없도록 내가 그 구멍을 막아버린 거라네. 그리고, 지난밤에 우리가 농부의 침대에서 잘 때에,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의 생명을 가지러 왔었지. 나는 그에게 대신 그 젖소를 주었지.”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항상 같지는 않다네”

 

때때로, 많은 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있다면, 모든 것이 항상 당신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시간이 지나서야 당신이 그것을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이제는 10여년 전이 되었네요.  어느 분이 보내주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우리 슈가로프의 한 교우님으로부터 온 메일 내용을 번역하여 함께 나누었던 글입니다.  보통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을 “세속적”이라고 합니다.  그 반대는 물론 “영적”이겠지요.  그리고 세상을 살면서 이 둘 중 어느 시각으로 현상을 관찰하느냐는 그 사람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을만큼 중요합니다.  

 

특히 이 점은 고난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더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나친 윤리적 관점으로 고난을 바라보면 매사를 인과응보적 잣대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고난받는 자들에 대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며 정죄하기 쉽게 되고 맙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스토아 학파나 불교의 가르침처럼 ‘자기초월적 관점’으로 고난을 바라보면서 고행을 통해 욕망을 털어버림으로써 고난을 극복 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의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팔자타령’ 그러니까 숙명론으로 옷칠한 미신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툭하면 신의 뜻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염세주의적인 가치관으로 빠지기 쉬운 위험한 생각이지요.

 

하지만 공중의 새도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는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인생사의 주인이시요 자녀 된 성도들을 눈동자처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난이라는 것도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주님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거나 내가 걸어 온 발자취, 현재 서 있는 내 자리, 그리고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 또한 이 골격 속에서 점검해 보는 기회라고 감사하게 받아드린다면 고난은 더할 나위 없는 복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단절이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소통이 되고, 현재의 침묵이 영원하신 주님께로 나를 집어 던지는 점핑보드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의 시기도 반드시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나가느냐라고 믿습니다.  감사하는 법을 배우면서 이 길을 걸어가시기를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