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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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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슈가로프한인교회 작성일18-12-01 13:48 조회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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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 14:31).  금년도 우리 교회 달력의 맨 마지막 장, 12월 달의 표지 성경구절입니다.  그리고 큰 글씨로 적혀 있는 제목은 “긍휼”입니다.  11월 장을 떼어내는 제 눈에 들어 온 이 말씀이 제 마음 깊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달력을 만든 이들이 아마도 이 구절을 12월달 주제 성구로 택할 때는 예수님이 오신 계절에 세상을 구원하시려 독생자를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담아내고자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보는 이들마다 주님의 그 마음을 알아 감사하고, 더 나아가서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긍휼히 여김으로 표현하라는 도전을 주고자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세대 이민자들로서 우리들 자신도 여전히 힘들고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은총을 입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병약하여 삐쩍 말랐고 가난했으며 불투명 자체였던 미래를 안고 40여년 전 두려움에 쌓여 시작했던 저의 이민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 혼자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일일이 찾아내어 억지로라도 고백하지 않으면 우리의 ‘원함’은 끝이 없어서 절대로 만족함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신세타령과 넋두리만 늘어놓고 말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매사를 철저하게 계산하며 살고 말 것입니다.  불행한 인생이 따로 없는 것이지요. 

 

사죄의 은총과 구원의 감격 속에서 주님의 사랑에 빚진 채무자 의식으로만 긍휼 베풂은 가능합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정치 철학과 시스템은 망상일뿐이라는 게 구 소련이나 북한등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신분도 서로를 ‘동무’ (친구)라고 부르지만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하고 철벽 계급이 철방통으로 존재하는 곳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권력을 친족까지도 서슴없이 죽이면서 유지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것은 유물론 사상의 당연하고도 허접한 결론일 뿐입니다.

 

긍휼은 사랑의 DNA입니다.  긍휼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주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도 결국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전도의 시작도 긍휼이어야 하고 구제의 전부가 긍휼이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을 예배함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할때 가능합니다.  시작 기도부터 축도로 마칠 때까지 예배자의 마음에는 주님의 긍휼을 강청하는 오직 한 가지 마음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만 무성할 뿐 주님의 영광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캘리포니아 산불로 어마어마한 재산피해는 물론 많은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어제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또 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해를 참 ‘무사히’ 살았습니다.  매번 기가막히게도 허리케인들이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을 비껴 지나갑니다.  지진은 우리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걸로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산불도 없고 홍수도 없고 눈폭탄도 없고 얼음 폭탄도 맞지않고 정말 잘 지내왔습니다.

 

당연한 게 아니라 주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당연한 것은 우리가 해야 할 감사의 행위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큰 어려움 당한 이웃들에게 표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드리는 일입니다.  감동된 마음을 담아 정성을 모아주시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포장하여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망과 위로와 용기로 꽃 피우고 열매 맺으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